[노성열의 AI경제] 정답만 쏟아내는 AI, 생각하는 과정은 누가 지키나
KPI뉴스
go@kpinews.kr | 2026-10-01 09:48:42
요약과 추천에 맡긴 판단…'사고의 외주화'가 지우는 배움
수학도 생명도 삶도, 의미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 메달'을 받았던 테렌스 타오 미국 UCLA 교수가 인공지능(AI) 기업의 수학 난제 접근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오픈AI가 지난 90년 동안 수학계 최고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문제'의 해법을 88시간 만에 찾았다고 발표한 직후다. AI가 오래된 난제를 풀어내고 있지만, 정답을 빨리 내놓는 경쟁은 오히려 '과정'이 중요한 수학의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수학계뿐 아니라, 최근 묻자마자 금방 튀어나온 정답에만 관심을 두고 의심 없이 함부로 쓰는 AI 사용 습관을 향한 포괄적인 경계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I에 과정이 빠져 있다는 비판은 아주 초기부터 나왔었다. 가장 광범위한 문제 제기는 '블랙박스' 논란이다. AI가 내놓는 답변에 도달하기까지 내부 연산과정을 인간이 검증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전학습과 추론에 들어가는 자료가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인 데다, 인공신경망 내 수많은 신경(layer) 간 연결 강도(weight)의 변화를 일일이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블랙박스 논란은 AI의 답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신뢰' 문제, 그리고 틀릴 경우 누구에게 추궁해야 하는가 하는 '책임'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넘기 위해 '설명가능(explainable) 인공지능' 같은 투명성 기술이 발전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AI 내부의 판단 과정을 좀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 제조 기업에 결론에 대한 사고 과정을 설명해달라거나, 자료 출처 표시를 의무화하는 등 보완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수학계에서 제기된 비판은 한마디로 "'과정' 없이 내놓은 AI의 화려한 성과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정'은 AI 내부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알고리즘의 논리적 경로와는 좀 다르다. 오히려 수학계 안의 인간적인 전달과 확산 과정을 의미한다. 타오 교수는 과학매체 '뉴사이언티스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속도 경쟁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학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AI 기업들의 최근 행태는 수학자들의 식탁에 손질도 안 된 고깃덩어리를 던져놓고 '당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며 그냥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수학은 단순히 답을 찾아내는 학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수학적 발견이 지식으로 자리 잡으려면 먼저 해법을 만들고 검증한 뒤, 다른 수학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이후 학계가 이를 받아들이고, 기존 수학 지식과 연결해 다음 세대에 가르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개념과 사고방식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푸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답이 목표가 아니라 해결을 위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하는 과정이 수학이라는 설명은 결과만을 노리는 AI 최신 사용법에 대한 비판과도 일맥상통한다.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로지 정답, 한 줄 정리 요약, 마지막 의사결정에 필요한 추천에만 매달리는 AI 사용자들은 결국 '사고(思考)의 외주화'로 치닫는 셈이다. 빠른 속도를 위해 내가 판단하고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째로 기계에 맡긴다. 기계가 순식간에 뽑아준 매끄러운 요약과 정답이 나의 지식인 듯 착각한다. 하지만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식은 한순간에 휘발해버릴 뿐이다. 최근 들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읽지 않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연구물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 달리 말해 읽고 쓰는 AI의 등장 후 독서 문화의 쇠퇴를 우려하는 출판 전문가들이 많다. 독일의 미디어 학자 크리스토프 엥게만은 2026년 최신 저작 '읽기의 위기: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에서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다. 그에 따르면 문자가 인터넷을 통해 디지털화되고, 특히 LLM이 발명된 후 '구술(口述) 플랫폼(platform)'이 전통적인 활자 매체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구술 플랫폼이란 구어(口語), 즉 일상생활의 말하기가 소통 수단이 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문자 메신저, SNS, 팟캐스트, 블로그, 위키피디아 같은 매체들이다. 여기에서 오가는 정보의 양이 전통적인 문어(文語), 즉 글쓰기 매체인 책, 신문, 잡지, 논문, 편지 등을 압도했다는 분석이다.
양적 측면뿐 아니라 무한 복제·전파가 가능한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구술 플랫폼이 활자 매체보다 여론형성과 어젠다 세팅의 우위를 점하는 주류 언론으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책을 직접 읽는 사람은 더 줄어들고, '대신 읽어주는 사람'인 블로거, 팟캐스터, SNS 인플루언서들이 여론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길고 지루한 '생각 과정'은 증발해버린 채, 빠르고 얄팍한 '정답 결과'만 판을 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 조사에서 보여준 성적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학생 4명 중 1명은 문장을 빨리 읽어내지만 이해는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집중해 읽는 능력은 떨어지고 빨리만 읽는 '성급한 독자'가 3년 새 2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한 85개국 중 3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또 만 30세의 문해력은 15세 수준에 그쳤다. 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이해력이 부족한 상태로 일하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수학계로 돌아가 보자. 타오 교수는 "AI 기업들이 앞단의 '발견'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신 AI의 성능 자랑을 위해 난제를 풀었다는 화려한 성과만 활용할 뿐, 나머지 중요한 작업은 수학계에 떠넘긴다는 것이다. 그는 "AI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면서 설명하고 소통하고 가르치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일은 우리가 뒤처리하게 한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화제가 된 나비에-스토크스 문제의 경우, 트리스탄 벅마스터 뉴욕대 교수와 앤트로픽 소속 수학자 레벤트 알푀게가 관련 문제를 연구하며 결과를 다듬고 있었다. 그는 "이들은 오픈AI가 자신들의 연구를 앞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완성도가 떨어지는 논문을 서둘러 공개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경쟁이 수학계 특유의 개방적인 연구 문화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결국엔 수학자들이 AI 기업이 쏟아낸 결과를 이해하고 정리해 다음 세대에 가르치는 일을 맡을 것"이라며 "결국 (AI가 내놓은 해법들이) 교과서에 실리게 되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방식은 매우 볼썽사나울 것"이라고 비꼬았다.
타오 교수의 비판은 생물학계에서 일고 있는 유전체(DNA) 결정론의 반박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생명체의 비밀은 DNA를 포함한 전체 구성요소가 생명 유지, 번식 등과 같은 목표를 향해 조화롭게 어울리는 '과정'에 있다는 주장이다. 레이먼드 노블과 데니스 노블이 저술한 책 '생명 시스템의 이해(Understanding Living Systems)'에서 저자들은 유전체가 단순한 코드나 청사진, 또는 지침서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 의해 지휘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DNA가 생명체를 숙주처럼 활용해 자신의 영속성을 도모한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유전자의 본질과 생명 시스템 내에서의 활용 방식에 대한 오해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생명체가 어떻게 선택을 내리고, 행동과 발달 및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선택의 주체로서 작용하는지를 설명한다. 생명 현상이란 이렇게 유기체가 행동 및 진화에서 선택을 내리는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명=과정'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생명은 DNA든 뭐든, 확정된 정답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 잘 보존해 넘겨주는 냉장고가 아니다. 생명의 비밀은 살아있기 위해 몸 안과 몸 밖의 모든 구성요소와 정보를 총동원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며 상호 조정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이야말로 삶 자체이며, 축적된 경험은 DNA에 아로새겨져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리라.
법조계에서도 '적법절차(Due Process)'는 법을 잘 지키기 위한 최후의 금도(襟度)다. 과정만 잘 준수해도 법이 달성하려던 원래의 목적은 수호된다는 교훈이다. 우주의 비밀은, 생명의 비밀은, 삶의 비밀은 '과정'에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결과'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이고, 인생과 우주의 진정한 의미이다. 모든 종교는 한 가지로 말한다. "왜 태어났냐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냐고 묻지 말라. 태어나 이 자리에 살아있는 이상 하루하루를 겸허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이 삶이고, 곧 살아가는 의미다"라고. 기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삶은 '텍스트(text, 외형적 결과)'가 아니라 텍스처(texture, 순간의 질감)라는 말이다.
생명은 과정이다. 거꾸로, 과정이야말로 생명이다. 과정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설사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무의미하다. 과정 없는 결과만 쏟아내는 AI를 경계할지어다.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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