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알 수 없는 당신을 환대하는 가장 윤리적인 사랑의 방식"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6-05 17:38:09

에세이집 '그의 이름은 만약에' 펴낸 비평가 이광호
에세이의 정체성을 에세이로 파고든 섬세한 글쓰기
샛길로 빠지고 배회하면서 쓰는 완결되지 않는 도정
"편 가르고 혐오하는 사회에 필요한 열린 에세이 정신"

에세이스트는 결론을 아는 자가 아니라, 쓰면서 문득 다음 문장을 발견하는 자이다.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면, 삶의 편린들과 잔해 속에서 쓰고 있다면, '그가 머물던 공간'과 '내가 떠나온 시간' 사이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에세이를 쓰고 있다. _ '에세이로 쓰는 에세이' 

 

▲ 다섯번째 에세이집을 펴낸 비평가·에세이스트 이광호. 그는 "당신이 선물해준 사납고 어여쁜 고독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썼다. [난다 제공]

 

명확한 목적지나 결론을 향해 가는 글쓰기가 아니라, 쓰면서 다음 문장을 발견하는 '배회하는' 글쓰기.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이광호가 최근 펴낸 다섯 번째 산문집 '그의 이름은 만약에'(난다)에서 규정하는 에세이의 속성 중 하나다. '에세이를 위한 에세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정교한 에세이로 에세이의 속성을 파고든다.

이광호는 에세이는 서사의 본론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으며, 중심과 요약의 폭력에 저항하는 글쓰기라고 쓴다. 글쓰기가 시작되면서도 자신이 무엇에 대해 쓰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글쓰기이며, 헐벗은 상태에서 사물과 시간의 '벌거벗음'을 마주하는 글쓰기라고 쓴다. 완결된 결론을 보여주는 지식이 아니라 탐색해나가는 사유의 시도 과정이라고 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대상의 고유한 정체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호명의 폭력성에서 벗어나 '만약에'라는 이름을 대입해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쓴다.

억압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이지만 함부로 내면을 배설하는 가벼운 글쓰기는 아니다. 이른바 진정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솔직한 언어를 구사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 진실한 표현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쓰는 자의 정체성을 들여다보고, '남은 자'의 끝없는 애도를 수행하며, 완전히 '헐벗은' 자의 글쓰기를 돌아보는 여정이 펼쳐진다.

어느 한 대목이나 한 문장에 이르러 잠시 멈칫하는 '잘린 글쓰기, 멈춘 글 읽기'는 쓰는 자와 읽는 자가 자신에게 익숙한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공유하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광호는 "그것은 쓰는 자의 '헐벗음'이 읽는 자의 헐벗음으로 전이되는 독서의 사건"이며 "글쓰기가 '익명적인 우리'를 연결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쓴다.

요약하지 않는 속성의 에세이를 무리하게 요약하자면, 에세이란 고정된 결론이나 체계를 증명하는 글이 아니라 "끊임없이 옆길로 새고 표류하면서, 쓰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고, 마주하는 대상의 단독성을 발견해 나가는 미완의 운동"이다. 구별짓고 배제하며 나와 다른 존재를 향한 거침없는 혐오가 일상이 된 세태에 필요한 '에세이 정신'이다. 


-소설적인 것과 시적인 것들을 뒤섞은 '익명의 에세이' 혹은 '픽션 에세이'를 지향해온 배경은?

"통상 에세이라고 하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솔직하게 쓴다는 전제가 있는데, 사실 솔직하고 진실하게 쓴다는 건 복잡한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든 허구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1인칭으로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쓴다는 게 과연 가능한지 질문을 해본 것이다. 아울러 보통 자신의 얘기라고 하면 주위 사람이나 가족에 대해 말하는데 억압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억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시도도 포함됐을 것 같다."

-'사랑의 미래'(2011)로부터 이어져 온 이번 다섯 번째 에세이집은 어떤 위상인가.
"에세이스트로서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에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해보자는, 중간점검 성격의 동기가 컸다. 사실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게 '익명'이라는 장치를 동원한다고 해도 쉽지 않았던 것인데, 익명의 에세이 뒤에 있던 조금 사적인 얘기들이 이번 에세이집에는 더 들어와 있다는 차이가 있다."

-쓰는 자와 읽는 자의 '헐벗음'이 연결될 때 큰 공명을 일으키며 독서를 잠시 멈추게 한다고 썼다.
"'헐벗음'은 솔직하다는 단순한 뉘앙스라기보다는, 어떤 이념이나 명분 같은 치장을 걷어냈을 때의 모습을 표현하는 좋은 개념 같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상태, 어떤 명분, 이념, 가치, 이런 걸 걷어냈을 때 본연의 상태에 가까운 것이 벌거벗음, 헐벗음의 상태가 아닌가 싶다."

'나'를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는 '나'는 무지한 육체에 가깝다. 자신에 대한 글쓰기가 쉽게 빠지는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은, 자기 서사의 우발성과 우연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솔직한 글쓰기를 위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냈다고 가정해보자. 문제는 그 드러냄의 방식이며, 드러내는 언어의 문제이다. 완벽하게 투명하고 중립적인 언어는 없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나' 자신에 대해 이방인이 되는 과정이다. _ '나, 언어 없는 얼굴들'

-내가 나 자신에게 '이방인'이 되어야 그나마 솔직한 글쓰기에 가까워지는가.
"늘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게 글쓰기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다. 흔히 글을 쓴다는 건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자기라고 믿었던 것에서 낯설어지는, 깨지는 문학적 경험이 오히려 글쓰기의 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상태를 자신에 대해 이방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그나마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자기가 자기라고 믿었던 확신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에세이는 일기와 어떻게 같고 다를까.
"에세이는 유령 같은 장르라서 모든 곳에 에세이적인 것이 있다. 편지에도 소설에도 있고, 일기도 에세이적인 글쓰기의 하나다. 일기는 거대한 서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그날의 짧은 이야기라는 점이 큰 매력이다. 우리가 긴 자기 삶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자꾸 그 인과 관계를 만들게 되고, 그건 허구일 가능성이 높고 자기 합리화일 가능성이 많다. 일기는 그날만의 이야기이고, 사실 그날이 그렇게 특별할 리가 별로 없다. 일기는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적인 매력이 있지만, 일기가 에세이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출판인(문학과지성사 대표)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이광호는 "책을 읽는 행위에서 멋을 찾는 젊은 독자들의 텍스트 힙은 굉장히 긍정적이지만, 자신만의 텍스트를 찾는 계기로 발전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난다 제공]

 

-에세이의 속성 중 하나로 '애도의 글쓰기'를 꼽은 배경은?
"우리가 글을 쓸 때는 사실 결핍이 동반될 가능성이 있다. 많은 경우 어떤 상실된 것이 있다는 거, 지금 없는 게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사라졌다, 지금은 없다, 이런 것에 대해 우리는 얘기하고 쓰고 싶어 한다.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다. 죽은 자가 아니라 어쨌든 지금은 살아 있는 사람, 그는 떠났거나 죽었지만 나는 남아 있으니까 남아 있는 사람이 쓰는 게 글이다. 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 사라진 것에 대해서 쓸 때 어떤 태도인가 생각해보면, 그 사람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거꾸로 그 사람을 내 안에 완전히 동일화한 상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을 타자로 남겨두면서도 계속 잊지 않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 이것이 애도에 관한 글쓰기라고 생각했고 에세이도 이와 유사한 방식이다."

-작금의 사회에 필요한 '에세이 정신'은?
"사회도 그렇고 문단에서도 하나의 가치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억압적인 것 같다. 사실 혐오도 그런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일 텐데, 한 사회나 문학의 세계도 고정된 하나의 가치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사실 문학이나 예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는 타자의 정체성을 다 포착할 수 없는 '아토포스'의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대상을 '알 수 없음' 그 자체로 환대하는 가장 윤리적인 사랑의 방식일 터이다. 열린 에세이 정신의 한 축이다. 이 책의 표제에서 '그'의 이름을 굳이 '만약에'라고 명명한 까닭도 여기에 닿아 있다. 이번 산문집에는 지은이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덧없는 찰나와 먼지처럼 흩날아갈 사물에 대한' 사진들도 곳곳에 삽입돼 있다. 찰나에 박제되는 것들에 대한 애도.

에세이를 '완결을 거부하는 형식'이라고 말한다면, 애도 역시 완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애도의 에세이는 애도를 지속하기 위한 공간, 죽은 자와 남아 있는 자가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만든다. _ '애도, 내 고양이의 장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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