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억 재산 환수 소송 대상' 친일파 신우선은 누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10-13 15:31:12

법무부, 신우선 후손 상대로 한 친일 재산 환수 소송 1심 승소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위원, 일제 강점기 군수 지내고 훈장 받아

법무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신우선의 후손을 상대로 제기한 약 27억 원 규모의 친일 재산 환수 소송 1심에서 전부 승소했다고 12일 오후 밝혔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로고. [뉴시스]

 

이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정부가 지난 1월 제기한 친일 재산 매각 대금 부당 이득 반환 청구 및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에서 8일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했다. 신우선이 일제 강점기인 1913·1917년에 취득한 토지에서 분할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소재 14필지 가운데 후손들이 1993년부터 2005년 사이에 매각한 13필지의 매각 대금(약 24억3000만 원)과 현재까지 보유 중인 토지 1필지(공시지가 약 2억7000만 원 상당)를 환수하기 위한 소송이다.

법무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오는 12월 3일 출범할 제2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환수 업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법무부에서 승소 사실을 밝힌 후, 법무부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닮은꼴 기사들이 여러 매체에 실렸다. 신우선의 이력에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로 활동했고 일제의 서훈 대상자였다는 점 정도만 언급한 것도 이 기사들의 공통점 중 하나다.

신우선의 삶을 조금 더 살펴보자. 신우선은 1873년생으로, 22세이던 1895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1895년부터 1900년까지 도쿄의 게이오의숙과 전수학교(專修學校)에서 학업 과정을 마쳤다. 게이오의숙은 일본의 아시아 멸시 및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세운 학교다.

1901년 귀국 후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법관양성소 교관, 보성전문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고 '민법총론' 간행에 참여했다. 1906~1907년에는 지금의 재정경제부 격인 대한제국 탁지부에서 서기관 등으로 근무했다. 1907~1908년에 흥사단, 대한학회 등의 사회단체에서도 활동했다.

1909년에는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의 위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해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에 의해 처단됐다. 그러자 친일 성향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안중근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볼썽사나운 행사였다.

여러 추도회 중 대표적인 행사로 그해 11월 4일 서울 장충단에서 열린 관민추도회가 꼽힌다. 대한제국 정부가 주도하고 한성부민회가 참여해 개최한 관민 합동 행사였다. 한국인들이 총체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관민 합동 행사로 기획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총리대신 이완용 등이 발기인으로 나선 이 추도회에서 신우선은 수부 담임(受付 擔任, 접수 담당) 설행(設行)위원을 맡았다.

일본에 국권을 뺏긴 경술국치 두 달 후인 1910년 10월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됐다. 중추원은 조선총독의 식민 통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911년과 1923년 사이에는 충남 연산, 당진, 공주, 아산에서 군수를 지내며 일선에서 식민 통치의 실무를 처리했다.

신우선은 1943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생전에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과 기념장을 여러 차례 받았다(1912년 한국병합기념장, 1915년 다이쇼대례기념장, 1920년 훈6등 서보장,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 1921년에는 고등관 4등으로 승격됐다. 서훈과 승격은 일제가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에 기여한 신우선의 이른바 '공로'를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신우선의 이름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2009년 활동)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거듭 올라갔다. 이완용 같은 친일파 거두로 보기는 어렵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 정부에서 신우선 후손에게 남겨진 친일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이유이자, 시민들이 그러한 소송 관련 사항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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