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또 하나의 우리글' 100주년인 것, 아시나요?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10-06 16:33:06
1926년 11월 4일 박두성이 발표한 훈맹정음
훈민정음 창제 의미를 이어받은 한글 점자
7일부터 훈맹정음 탄생 100돌 기념 특별전

올해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 100주년이다. 또한 많은 한국인의 마음을 울린 영화 '아리랑'(감독 나운규) 개봉 100주년이다(1926년 10월 1일 개봉).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기도 하다. 조선어연구회(오늘날 한글학회) 등이 가갸날(지금의 한글날)을 정하고 처음으로 기념식을 연 해가 1926년이다.

이 세 사안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기억할 필요가 있는 또 다른 100주년이 있다. 바로 훈맹정음(訓盲正音) 탄생 100주년이다.
 

▲ 송암점자도서관(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전시된 박두성 흉상. [정민화(2016년 7월 19일 촬영)]

 

훈맹정음은 송암 박두성(1888~1963년)이 1926년에 발표한 한글 점자(點字)다. 점자는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를 말한다.

훈맹정음이라는 이름에는 1446년(세종 28년) 반포 당시 한글 명칭인 훈민정음을 계승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훈민정음에서 '민(民, 백성)'을 1926년 당시 시각장애인을 가리키던 말인 맹인의 '맹'으로 바꿔,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를 이어받은 점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훈맹정음이 발표된 날이 1926년 11월 4일이라는 점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한글날이 10월 9일인 오늘날과 달리, 1926년 조선어연구회 관계자들은 훈민정음이 144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에 반포됐다고 추정했다. 그래서 가갸날 기념식을 11월 4일에 거행했다. 그날 박두성은 훈맹정음을 세상에 내놓았다.

훈맹정음이 최초의 한글 점자인 것은 아니다. 훈맹정음 이전에 이른바 '평양 점자'가 있었다. 1890년대부터 조선에서 활동한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년)이 만든 점자였다. 로제타 셔우드 홀이 평양에 학교를 세우고 시각장애인에게 이 점자를 가르쳐 '평양 점자'로 불렸다.

'평양 점자'엔 적잖은 결함이 있었다. 주요 문제점 중 하나는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아 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이 미국에서 사용된 '뉴욕 점자'를 바탕으로 '평양 점자'를 만든 데서 비롯된 문제였다.

오늘날 자국어 점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으로 채택하고 있는 점자 체계는 6점식 점자다. 한 칸에 6개의 점(세로 3점, 가로 2점)을 조합해 문자를 표기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뉴욕 점자'를 근간으로 한 '평양 점자'는 4점식 점자여서 한글 표기에 부적합했다.

훈맹정음은 6점식 점자다. 이를 발표한 박두성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에 부임하면서 특수교육에 발을 들였다.

제생원 맹아부에서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교육을 실시했다. 중심축을 이룬 것은 직업 교육이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안마사가 되기 위한 기술 습득 교육이 핵심이었다.

조선 시대에 시각장애인은 점치는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안마가 시각장애인의 직종으로 여겨졌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 관련 직업 교육을 실시하며 자국 전통을 이식했다. 그 밑바탕에는 자신들이 조선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애롭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선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조선 시각장애인들이 일본에서 들어온 직종인 안마 기술을 새롭게 습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자로서 한계가 분명한 '평양 점자' 이외에 마땅한 한글 점자가 없어 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박두성은 1920년 점자 연구에 착수했다. 1923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결성하고,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연구를 진행하다가 박두성 본인이 각막염에 걸려 시력을 잃을 뻔했다고 전해질 만큼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견지한 원칙은 세 가지였다. 배우기 쉬워야 한다, 사용되는 점 수효가 적어야 한다,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공식 한글 점자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훈맹정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2021년 11월 제99호)에서 훈맹정음이 '또 하나의 우리글', '시각장애인의 한글'로 표현된 이유다. 훈맹정음이 발표된 11월 4일은 2020년 법정 기념일인 한글 점자의 날로 지정됐다.

훈맹정음 탄생 100돌 기념 특별 전시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이 7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에서 열린다. 올해를 '한글의 해'로 지정한 국립한글박물관이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송암점자도서관과 함께 주관하는 전시다. 시각장애인과 함께한 '또 하나의 우리글'이 걸어온 한 세기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자리다.

 

▲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 포스터.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송암점자도서관]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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