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다 울고 나면 왜 울었는지 잊게 될 거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7-10 16:38:29
익숙한 서정을 부수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 구축
현실을 직시하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증도 놓치 않아
"지금 우리 문단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는 햇생강"
이즈음 젊은 시인들의 정서와 시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앤솔러지 시집이 출간됐다. '창작과 비평'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시인 특집을 기반으로 현재 시단에서 주목받는 시인 23명을 선정해 그들의 신작시를 모은 '햇생강이 나오면'(창비)이 그것이다. 박준, 안희연, 황인찬 시인과 송종원 평론가가 엮은이로 참여해 독후감을 메모 형식으로 덧붙였다.
시집 제목은 남현지의 '햇'에서 가져왔다. 엮은이들은 "이제 막 땅을 뚫고 돋아난 풋풋한 싹. 흙을 툭툭 털어내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그 알알한 맛. 우리는 스물세 명의 젊은 시인이 직조해낸 문장들 속에서 바로 그 '햇생강'의 알싸함을 맛보았다"면서 "기존의 익숙한 서정을 과감히 부수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짓고 있는 이 시인들의 목소리야말로, 지금 우리 문단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는 햇생강"일 것이라면서 "이 생생한 에너지가 모여 거대한 '내일의 숲'을 이룰 것"이라고 기획의 말에서 밝혔다.
젊은 세대의 고단한 현실을 신파적 정조가 아닌 그들만의 비판적 시각으로 그려내고, 포기할 수 없는 사랑과 가까이 다가가 위로하는 마음들이 섬세하게 스며 있다. 울음이 북받쳐도 그 울음을 통곡으로 이어가지 않아서 더 애잔하다.
강우근은 "세상이 아름다울 때, 나는 아무 미련 없이 사라져도 괜찮을 것"이라면서 "작은 세계를 이루어나가는 풍경들에서 살짝 발을 빼도 될 것 같은 기분"인데 인간만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너무 찐득찐득하고 물렁물렁"하여 쉽게 포기하거나 물러설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을이 지고 어두워지고 있는데// 그동안 숨바꼭질을 하며/ 나무 뒤에서, 슈퍼마켓 평상 밑에서, 교회 의자 구석에서 서로를 발견하며 깔깔 웃었던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창고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아이를 끌어안으며 엉엉 웁니다// 작은 손들로부터 잔뜩 묻은 먼지가 털어지는/ 창고에서 깜빡 잠든지도 몰랐던 아이는/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_강우근, '개미 한 마리를 실수로 밟을 뻔한 날' 부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증이 바탕을 이룬 "최선을 다해 대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순하고 선한 마음"과 "맑음과 환함"으로 충만한 정서가 혐오와 갈등의 세상을 비추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질병과 고통, 그리고 사회 시스템이 가하는 소외를 방어적인 태도로 대하지 않는다. 김보나의 '김근종'은 자학개그에 가까운 역설과 유머를 통해 고통과 역경을 정면 돌파하는 근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몸속에 자라난 8센티미터짜리 자궁근종을 '김근종'이라는 인물로 호명하며 말을 건네는 대목은 신파적 위로를 배반한다.
'어이, 근종 / 나다 김보나 / 그래 너무 고깝게 듣지는 말고 좀 / 작아져줄 수 있겠나 근데 작아져도 어차피 / 째야 한다아이가 그러니까 좀 / 나가줄 수 있겠나 부부싸움하는 어른들처럼 세간살이 다 때려 부수지는 말고 그래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빚진 어디 집처럼, 눈 감았다 떴더니 감쪽같이 내뺀 어느 집처럼, 그래 그렇게 야반도주해줄 수는 없겠나 그래' _김보나, '김근종' 부분
'지금 주식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주식이라도 시작할까, 했더니 와르르 떨어졌고요. 마치 내가 잠들어야만 이기는 중요한, 그 모든 경기처럼요. 하지만 이런 말은 영향력도 없는 나라는 개인을 너무 과평가하는 거구요.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이러고 있는 중입니다.// 귀와 뇌를 때리는 비트를 좋아합니다./ 많이 들으면 뇌와 귀가 녹았으면 좋겠어요. 더이상 생각할 수도 없도록.' _강지이, '여기에서' 부분
임주아 시인의 '습설'은 슬픈 이야기를 가장 안 슬프게 읊조림으로써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시인은 아빠의 죽음과 영안실, 교도소 접견이라는 비극적이고 묵직한 가족사의 상처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교도소에 들어간 아빠와 접견했었다 / 소시지와 양말을 넣어주고 / 수명 연장했네, 하자 / 빙긋이 웃었다 / 얼굴이 너무 편안해서 죽은 사람 같았다// 망가진 마음을 입고 / 고사장 앞 여관에 나란히 누운 날도 있었다 / 아빠, 내일 시제 뭐 나올까? / 한번 내줘봐, 응? /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 코 고는 소리 들려왔다' _임주아, '습설' 부분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 코 고는 소리 들려왔다"라는 담담한 결구는 쓰인 말보다 쓰이지 않은 틈새의 언어로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감정의 과잉을 통제하고 먼저 앞서나가지 않으려고 꼭 쥔 주먹과 참은 눈물이 지면에 고스란히 배어난다. 슬픔에 물들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서정의 새로운 보폭이다.
이용훈의 '희곡지구'와 '내 몸뚱아리 욱여넣고 달래볼까'에서는 미사여구나 은유 대신 땀 냄새 나는 정직한 육체의 노동이 시의 중심을 이룬다. 건축 현장의 잡부로서, 혹은 단체 급식실의 노동자로서 시인은 "기술 아닌 육체를 밑천 삼아" 삶의 토대를 일군다.
'반짝반짝 뽀얀, 세척돼서 나오는 식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배식대는 사각사각 사람들은 일렬종대 한가득 퍼담으려는 얼굴들은 사각입니다 허기를 채우고 버려지는 것들은 언제나 싱거운 것들이라니까 딱딱하게 굳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짜고 매콤한 것들뿐이라니까 통통 불은 배춧잎 누르스름 국그릇 둥둥 떠다니는 밥풀들 타일 바닥 고무장화 밑으로 수채통이 막혔습니다/ 누가 수도꼭지 좀 잠가주시겠습니까?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_이용훈, '내 몸뚱아리 욱여넣고 달래볼까' 부분
한여진은 '자수'와 '연착' 연작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사랑의 시차'를 정교하게 빚어낸다. '자수'가 깊은 잠에 빠져 답해줄 수 없는 '형님'을 향해 밤 깊은 방 안에서 색색의 수를 놓는 고풍스러운 시대극의 정취라면, '연착'은 눈의 도시를 통과하며 창문을 깨는 현대적 기차의 서사다. 기차가 정시에 정류장에 가닿아도 정작 그곳에 "네가 없다는 것"을 시인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때를 놓쳤기에 돌이킬 수 없고 금지되었기에 어디에도 온전히 닿지 못할 사랑이지만, 시인은 "다만 소멸하지 않고 그 빛과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고백한다.
'기차는 눈의 도시를 통과하는 중이다/ 새하얀 빛에 눈이 멀어 비상유리창을 깬다/ 여우색시 웃음소리가 들린다// 여긴 어디야?// 네가 출발한 곳으로부터 백 년이 흘렀지// 눈 덮인 하얀 들판 아래 어제의 낙엽이 죽어 있다 그 위를 명랑하게 걷던 사람들도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눈 위로 뛰어든다 풍덩이며 파도가 인다 겨울잠을 자던 잉어가 놀라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 덜컹이며 기차가 잠시 멈출 때/ 단꿈에서 깬다// 모든 빛은 과거의 것/ 그러니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기차가 정시에 도착해도/ 거기 네가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소멸하지 않고 그 빛과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_한여진, '연착' 전문
남현지의 '햇'은 이러한 젊은 세대의 쓸쓸함과 헛헛함의 풍경을 중간세대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끌어안는다. 이들 외에도 김상희, 김진선, 김혜연, 박지일, 신준영, 여세실, 우은주, 유선혜, 유수연, 이자켓, 이하윤, 임유영, 장혜령, 조성래, 조은윤, 주민현 등이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도 놓치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마음들이 공통으로 느껴지는 연초록 시집이다. 이토록 다감한 시편 하나.
'다 울고 나면/ 왜 울었는지 잊게 될 거야// 아주 커다란 숟가락을 준비해둬// 봄에 나는 잎들을 씹어보면 알게 되니까/ 한 입씩 씹을 때마다 입속에서 소리가 날 테니까// 한 발짝씩 멀어지는 소리 가까워오는 소리/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씹고 있는 너에게// 정들어/ 몰래 작게 당기기' _여세실, '너의 여자 아빠'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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