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 눈물을 달콤한 술처럼 당신께 바치나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7-24 17:30:17
고대 점토판부터 '텍스트힙'까지 여성 독자의 흔적 탐색
현저히 떨어진 남성들 독서율, 종 다양성 차원에서 볼 일
"여성이 읽기를 멈추는 순간 책은 죽을 것, 너무 감사하다"
작금 출판계는 여성 독자의 시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여성의 독서율이 1998년을 기점으로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하더니 이즈음은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가 전원 여성이었던 것도 최근 일이고,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문학과 출판이 대세를 이룬 듯한 모양새다. 이른바 '읽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왜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편견이 극복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른바 '여성 읽기'의 역사는 막아서는 세력에 저항하며 '나아가는' 흐름으로 압축된다. 여성들의 읽기와 쓰기는 고대 로마부터 계몽주의 시대 유럽, 빅토리아 시대 영국, 유교적 가부장제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남성 지식인사회가 공통으로 가졌던 오랜 통념과 그들의 경계를 넘어서야 했다.
여성은 이성적으로 열등하고 감정적이어서 읽기를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중세 마녀사냥의 화형대로 이어졌고, 이런 논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조차 "부녀자가 패관잡서에 빠지면 길쌈하는 일을 끝내 그만두게 된다"며 한글소설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강고했다.
최현미의 신간 '읽는 여성의 역사'(어크로스)는 '막아서는 역사'에 굴하지 않고 읽고 쓰며 세상을 이해하고 경계를 넘어온 여성들의 '나아가는 역사'를 복원한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한 세대에 걸쳐 책의 세계를 취재하며 읽고 써 온 최현미는 고대 수메르의 점토판부터 오늘날의 텍스트힙 현상까지 빠진 퍼즐 조각처럼 비어 있던 여성 독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인류 최초의 저작권자이자 여사제인 엔헤두안나는 1인칭 '나'를 전면에 내세우며 성폭력과 정치적 폭력의 고통을 "거품이 이는 손이 내 꿀 같은 입을 덮었다"고 고발하고 시로 승화시켰다. 서양문학의 기원으로 평가되는 호메로스보다 1500년 앞섰다. 읽고 쓰기 위해 은둔을 선택한 중세 독서광 수녀들, 비녀와 은장도를 맡기고 세책점에서 소설을 빌려 읽던 규방 여성들까지, 책을 읽는 여성들이 어떻게 암담한 상황을 뚫고 나아갔는지 다채롭게 보여주는 노작이다.
최현미는 "여성 독자는 그저 '뒤에서 읽는 이'가 아니라 앞에서 작가를 끄는 '강력한 힘'이 됐는데 그 기세가 놀라웠다"면서 "여성들은 언제부터 읽기 시작해, 어떤 시간을 거쳐,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했다"고 썼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외서 쪽에는 여성 읽기의 역사들이 더러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없다면, 직접 써라"는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말을 실천했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의 읽기 역사뿐만 아니라, 출판의 역사를 돌아보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연재를 하지 않고 전작으로 1년 넘게 걸려 썼다. 방대한 자료들은 읽기의 편의를 위해 책 뒤에 제시했는데, 여성의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책이 처음 어떻게 나오고 인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었고, 대중적인 출판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여성의 읽기와 출판에 방점을 찍었지만 그 토대는 세계 출판 역사의 궤도 위에 있기 때문에 출판의 역사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다."
-눈물을 달콤한 술처럼 바친, 인류 최초의 시인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엔헤두안나(BC 2285~BC 2250)가 그리스 여성이었다면 호메로스보다 더 빨리 발견됐을 텐데, 중동 지역 메소포타미아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가 사용한 쐐기문자는 하나의 단어가 갖는 의미가 여러가지여서 그 여성이 남긴 글들에 대한 번역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시대에 분명히 존재한 엔헤두안나를 지금 여성들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포지셔닝이 달라진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연구자들이 엔헤두안나라는 이름 하나로 여러 시를 모았다는 해석도 있지만, 시간 너머에 있는 그가 남긴 점토판을 보고 끊임없이 해석을 하는 지금 여성들의 읽기를 상징하는 인물인 셈이다."
-여성들의 읽기를 '막아서는 역사'와 '나아가는 역사'라는 두 물줄기를 훑어 내려오면서 더 뭉클했거나 발견의 기쁨이 컸던 인물은?
"여성들의 읽기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8~19세기 소설의 혁명인데, 그 시대를 만든 여성들을 발견하는 게 너무 좋았다. 열다섯 살 하녀 파멜라 이야기를 다룬 소설 속 주인공이 남자의 집요한 성적 강요와 협박에 저항해 명예와 순결을 지킨 끝에 결혼에 성공하자, 독자들이 실제 일인 것처럼 흥분해서 뛰쳐나가 교회 종을 울렸다는 일화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튀르키예에서 발굴된 2만 3000여 통의 점토판 편지에 여성들의 고단한 일상의 애환이 기록된 대목도 지금 엄마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애틋했다. 조선의 여성 학자들이 한계에 부딪쳐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대목도 애통하다."
-비극적으로 생을 끝낸 나혜석, 김명순 등 1920년대 조선 신여성들의 글쓰기가 어떤 '나비효과'를 만들어냈는가.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과정에서 그 여성들이 다시 불려 나왔다. 우리가 지난 시대를 돌아봐서 불러낼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다. 그 시대는 그 시대의 한계로 인해서 그때 끝났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불러낼 수 있는 여성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여성들의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남성들의 독서율이 여성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생각했던 주제다. 근본적으로는 여성이 많이 읽는 게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 독서율은 떨어졌는데, 2007년 아이폰이 나왔을 때를 기점으로 세계 공통으로 독서율이 하락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적게 떨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남성과 여성의 읽기 목적은 조금 달랐다. 남성은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 같은 것을 얻기 위한 독서가 중심이었고, 여성은 읽기가 금지되고 통제된 상황에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독서를 많이 했다. 남성들이 책보다 훨씬 빨리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AI라든지 디지털 세계로 나아간 데 비해, 여성은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매체가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력적인 읽는 여성 캐릭터들이 있는 반면에, 남성들에게는 그런 이미지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개막했던 여성 작가(women writers), 여성 주인공(women protagonists), 여성 독자(women readers)라는 이른바 '3W 시대'가 21세기 한국에서 정점을 맞고 있는 듯하다. 쏠림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여성 독자에 대한 편견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독자가 많아서 시장이 가벼워지고 쉬워진다고 하는데, 여성 독자들이 특정 카테고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과도한 전형화는 위험할 수 있다. 여성들이 잘 읽을 거니까 에세이에 주력해야 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독자가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독서 시대가 열렸는데 이 독자들이 원하는 게 꼭 가볍고 그런 건 아니다. 여성 독자들이 읽고 싶었던 욕망들을 제대로 파악했을 때 18~19세기 소설 혁명이 일어났다. 출판사들도 이 시대 독자들의 열망, 어쩌면 그들 자신도 모르는 열망을 찾아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최현미는 "남성 독자들이 희소해진 세계가 여성 독자들에게도 결코 좋지 않다"면서 "다양한 읽기와 장르와 주제가 종 다양성처럼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독서율도 상승하는 게 아니다"면서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독서율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성이 안 읽으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이 읽기를 멈추는 순간 책은 죽을 것"이라고 선언한 그가 책 말미에 붙인, 먼 훗날 어느 보고서에 쓰이기를 바라는 문장.
'21세기 초, AI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여성들은 더 많이, 더 깊이, 더 열렬히 읽었다. 여성들은 책의 세계를 떠받친 아틀라스였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