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조 환원 발표 다음날 주가 8.7% 폭락…시장 기다린 자사주 소각은 '빈칸'
소각 때마다 삼성생명·화재 지분 매각…금산법 승인선 10% 사실상 꽉 채워
주당가치 높이려면 지배구조 약화 부담…주주와 이재용 회장 이해 엇갈려
주주환원은 회사가 번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최대 11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한 다음날 주가는 8.7% 폭락했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액수보다 방식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공시에서 2026년 잔여 주주환원 재원을 약 90조~110조 원으로 제시하고, 3분기에 정규 분기배당을 포함해 약 30조 원의 현금배당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이 기다린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는 제시하지 않고 2027년 1월 말 이사회로 미뤘다. 같은 날 공시한 15조 원 규모의 보통주 취득은 임직원 주식보상 목적이지 주주환원용 소각과는 관계 없다.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사기(社旗)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자사주 매입·소각이 '빈칸'으로 남은 이유로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거론된다.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은 주주 몫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같지만 지분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배당은 발행주식 수를 건드리지 않아 지분율이 그대로다. 반면 보통주를 소각하면 주식 수가 줄어 남은 주주들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이 대목에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변수로 등장한다. 두 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는 총 5억8452만7860주로,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 대비 합산 지분율이 9.999999986%다. 양사가 금융위원회 승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 관리해온 10% 선에 근접해 있어 한 주의 여유도 없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제24조는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 주식을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하고 그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금융위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다. 자사주 소각 등으로 이 범위를 넘게 되면 다시 금융위 승인을 받거나 초과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지금까지 승인 신청 대신 선제 매각을 택해왔다. 삼성전자가 지난 3월 보통주 7335만9314주를 소각하기에 앞서 삼성생명은 624만4658주, 삼성화재는 109만1273주를 처분했다. 소각 물량의 약 10%다. 2018년과 2025년에도 소각에 앞서 두 보험계열사가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문제는 이 지분이 이재용 회장 측이 삼성전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구조의 핵심 축이라는 데 있다. 이 회장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는 1.65%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20.82%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5.01%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갖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회장 측의 삼성전자 지배력에서 삼성물산과 보험계열사 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이재용 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일반주주의 이익(주주환원)과 이재용 회장의 이익(그룹지배력)이 충돌하는 지점이 여기다.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남은 주주의 주당 가치는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반면 소각 때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합산 지분율을 약 10%로 맞추기 위해 주식을 처분하면 지배구조의 핵심 축을 이루는 보험계열사의 보유 주식 수는 줄어든다. 소각만으로 이 회장 측의 의결권 비율이 곧바로 낮아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주주가 선호하는 환원 방식을 택할 때마다 지배구조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핵심은 총수 일가가 적은 직접 지분으로 보험계열사의 자산을 활용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라며 "금융회사와 보험계약자의 자산이 그룹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는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으로 소각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소각한 만큼 보험계열사가 초과 지분을 매각하면 된다"며 "소각 과정에서 그룹 지배력이 약화할 가능성을 삼성 측이 부담스러워하는 문제이고, 주주환원보다 지배력 유지를 먼저 고려한다면 그것이 지배구조상의 문제"라고 했다.
부담의 크기는 계산이 가능하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보통주 10조 원어치를 매입·소각하면 두 보험사의 합산 처분액은 약 1조 원, 삼성생명이 약 8500억 원, 삼성화재가 약 1500억 원 수준"이라며 "20조 원 소각이면 각각 약 1조7000억 원과 3000억 원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소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약은 아니지만, 삼성전자는 소각을 결정할 때마다 보험계열사의 매각 규모와 시기, 시장 충격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소각을 삼성전자 한 회사의 자본 배분 문제로만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제약"이라고 진단했다.
일반주주 입장에서 자사주 소각의 효과는 작지 않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소각하면 발행주식 수가 줄면서 주당순이익과 주당 잉여현금흐름이 높아지고 시장에서 직접적인 매수 수요도 발생한다"며 "대규모 매입·소각은 회사가 현 주가를 저평가로 본다는 신호를 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저평가된 상황에서는 자사주 매입·소각이 일반적으로 주당 가치 제고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대안으로 보험계열사 지분의 단계적 축소와 비금융 계열사의 직접 지분 확대를 거론했다. 다만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 확대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구체적인 방식과 재원 마련이 과제로 남는다. 김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지배구조 문제와 주주환원을 분리해야 한다"며 "배당과 자사주 비중, 보험계열사의 예상 매각 규모, 향후 3개년 자본 배분 원칙을 공개하면 불확실성에 따른 지배구조 할인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 현금배당 구체안을 10월 말 이사회에서, 나머지 환원 조합을 2027년 1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회사는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매입도 주주와 임직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 주주가치 증대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험계열사의 지분 매각 부담이 환원 방식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