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 짝꿍 '일리아스'...조선에 왜 연애소설로 소개됐나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8-26 17:06:54

영화 '오디세이' 흥행…서점가에서도 관련 책 열풍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스', 1923년 국내 첫 소개
'일리아스'를 연애 소설 '이리에트 니야기'로 각색
'검열 강화, 자유연애 확산' 1920년대 시대상 반영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 '오디세이'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오디세이'는 개봉 19일째인 지난 23일 국내 누적 관객 7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최장기간 예매율 1위 영화 기록도 경신했다. 

 

▲ 영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오디세이' 열풍은 서점가에서도 불고 있다. 영화의 원작인 호메로스 서사시 '오디세이아'(번역본에 따라 '오뒷세이아'로도 표기)는 물론, '오디세이아'의 짝꿍 격 작품인 '일리아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영화 '오디세이' 개봉을 앞둔 7월에 관련 서적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여섯배나 늘었다.

국내에서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영어나 일본어 중역이 아닌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으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반세기도 되지 않았다. 1982년 천병희 교수가 최초의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 '일리아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후 '오디세이아' 원전 번역본도 독자에게 선보였다.

2020년대 들어 서양 고전학자인 김기영 박사,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새로운 '오디세이아' 원전 번역본을 내놓았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의역한 부분이 많은 천 교수 번역본에 비해 2020년대 번역본들은 원전을 직역한 경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메로스 서사시는 한국에 언제, 어떤 형태로 처음 소개됐을까? 이에 대한 연구 성과는 드문데, 김헌 교수의 2019년 논문(식민지 조선의 『일리아스』 읽기 — 연애 소설로 읽은 노자영 연구)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논문에 따르면, 호메로스 서사시가 한반도에 처음 소개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일리아스'는 일제 강점기에 책과 신문을 통해 네 차례 소개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오디세이아'는 식민지 조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두 서사시가 짝꿍 격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흥미로운 현상이다.

'일리아스'를 최초로 소개한 작품은 1923년 노자영(1898~1940)이 펴낸 '이리에트 니야기'라는 책으로 파악된다. 이어 1925년 오천석의 책 '세계문학걸작집'에 '일리아스'를 축약·번역한 내용이 실렸다. 1929년에는 조선일보에 '이리앗드'라는 제목으로 전체 줄거리를 소개하는 글이 5회 게재됐다. 1940~1941년에는 이 서사시를 완역한 '일리아드'(번역 림학수)라는 2권의 책이 출간됐다.

최초 소개자인 노자영은 시인이자 수필가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1920년대에 잡지 '백조' 동인 등으로 활동했고 1930년대에는 잡지 '조광' 편집자 등으로 일했다.

시와 수필뿐 아니라 소설도 썼는데, 산문에서 소녀 취향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연애 소설과 서간집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서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 비평가들에게 '모방과 표절 의혹이 있다'는 지적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리에트 니야기'는 '일리아스' 완역이 아니라 요약본이다. 총 86쪽의 이 책에서 노자영은 '일리아스'를 연애 소설로 각색했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아내 헬레네를 뺏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가 전쟁을 통해 아내를 되찾고, 아내와 함께 귀향해 행복하게 산다는 구도로 전체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원작에 없는 연애 소설 요소를 곳곳에 삽입했다. 그 결과, 원작의 핵심 주제인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슬픔 및 트로이 왕자 헥토르의 장렬한 전사 등은 보조 요소로 전락했다.

 

▲ '이리앳트 니야기'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이러한 특성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책 표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표지에는 '이리에트 니야기'라는 제목 위에 '연애 소설'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김 교수는 "'일리아스'를 연애 소설로 읽는 노자영의 시각이나 태도는 원작자의 의도에서는 크게 벗어난 것", "원작의 숭고한 비극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평가했다.

'일리아스'가 최초에 연애 소설로 소개된 데에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이 담겨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앞세워 한반도를 무단 통치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채찍을 전면에 내세운 무단 통치에서 기만적인 유화 정책을 일부 섞은 이른바 문화 정치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동아일보, 조선일보 같은 신문과 다수의 잡지가 창간되고 출판사가 늘어났다. 그와 함께 신문, 잡지, 책 등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강화됐다. 그러한 상황에서 상당수 출판사는 연애 소설이라는 장르에 주목했다. 검열과 탄압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적고,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수익을 올리기 좋은 장르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1920년대는 식민지 조선에서 자유연애 풍조가 빠르게 번진 시기였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신여성의 결의 등이 담긴 연애편지 모음집이 불티나게 팔리던 때였다. 노자영은 그러한 시류에 편승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였다.

연애 소설 색채를 띤 '일리아스' 소개는 노자영의 '이리에트 니야기'만이 아니다. 1929년 조선일보에 게재된 '이리앗드' 역시 연애 소설 분위기를 살려 '일리아스'를 소개했다. 이와 달리 1925년 오천석의 책 '세계문학걸작집'과 1940~1941년에 완역된 2권의 책 '일리아드'는 원작 내용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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