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된 독립 영웅, 욱일기, 바이킹…월드컵 응원 속 역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6-26 15:30:43
일본 군국주의 상징 욱일기 동원 응원 논란…FIFA는 모르는 척
비운의 정치인 루뭄바 형상화한 민주콩고 '동상 응원'도 관심 모아
역대 월드컵에서는 대회마다 독특한 응원 문화가 등장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인들의 거리 응원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남아공 응원 도구인 부부젤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아이슬란드인들의 천둥 박수가 화제가 됐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눈길을 끄는 응원이 여럿 등장했다. 대표적 사례가 바이킹의 후예를 자처하는 노르웨이 팬들이 선보인 바이킹 노 젓기 응원이다.
관중석에 앉은 팬들이 북소리에 맞춰 단체로 노를 젓듯이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당기는 동작을 거듭하는 방식이다. 북을 빠르게 치면 동작도 빨라진다. 노를 젓는 듯한 이 동작을 취하며 '루르(Ror)' 등의 구호를 함께 외친다. 루르는 '노를 젓는다'라는 뜻의 노르웨이어다.
노르웨이 선수단이 동참해 더 화제가 됐다. 노르웨이 선수들과 감독은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I조 2차전에서 세네갈을 3대2로 물리치고 32강 진출을 확정한 후 그라운드에서 바이킹 노 젓기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 응원이 인기를 끌면서 노르웨이 정치인들이 단체로 따라 하는 일도 벌어졌다. 18일 노르웨이 의회에서는 국회의장의 지휘 아래 여야 의원들이 '루르'라고 외치며 바이킹 노 젓기 응원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노 젓기 응원이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바이킹의 후예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노르웨이 대표팀이 자국 해변에서 바이킹 복장을 하고 사진 촬영을 했을 때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과거의 신나치 세력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라는 비판이 노르웨이 내에서 제기됐다. '약탈, 침략, 성범죄 등으로 악명 높았던 바이킹 시대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도 지적도 나왔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응원에 활용된 역사 관련 사항은 바이킹만이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 욱일기도 응원에 동원됐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F조 조별 리그 1차전이 열린 14일, 일부 일본 팬이 경기장 밖 거리 응원에서 욱일기를 사용했다. 일본과 튀니지의 조별 리그 2차전이 열린 20일에는 욱일기가 경기장 내 관중석에 등장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FIFA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번지는 분위기다.
자국 독립 영웅을 관중석에서 형상화한 '동상 응원'으로 관심을 모은 사례도 있다. 1974년 이후 5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축구 팬 미셸 은쿠카 음볼라딩가가 펼친 '살아 있는 동상'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동상의 주인공은 파트리스 루뭄바다.
민주콩고는 19세기 말부터 벨기에의 지배를 받았다. 강제 노동, 착취, 고문, 학살, 굶주림이 만연한 가혹한 식민 지배였다. 1960년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독립 영웅으로 통하는 루뭄바다.
독립 후 루뭄바가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군인들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반식민주의 지향이 뚜렷했던 루뭄바는 체포돼 이듬해(1961년) 1월 살해됐다.
음볼라딩가는 23일 민주콩고와 콜롬비아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K조 2차전이 열린 멕시코 사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 관중석에서 '살아 있는 동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루뭄바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하고,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에 있는 루뭄바 동상의 자세를 취한 채 경기 내내 움직이지 않는 퍼포먼스다.
그것을 통해 65년 전 살해된 비운의 정치인 루뭄바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음볼라딩가는 조용한 울림이 있는 이 퍼포먼스를 이번 월드컵에 앞서 202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에서도 펼쳤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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