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간첩 조작' 수사 이끈 김기춘과 판검사들에겐 면죄부?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7-22 17:26:32

정부, 반헌법적 행위자 및 간첩 조작 사건 관련자 서훈 취소
고문 기술자 이근안 등 167명에게 수여된 정부 포상 198건
재일 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수사 책임자 김기춘은 미포함
간첩 조작 사건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었던 판검사들도 빠져

정부가 21일 국무회의에서 '반헌법적 행위자 및 간첩 조작 사건 관련자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했다. 대상이 된 서훈은 167명에게 수여된 정부 포상 198건이다.

167명 중 76명은 1979년 12·12쿠데타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가담한 이들이다. 나머지 91명은 1960~1990년대에 빈발했던 간첩 조작 사건 관련자들이다. 이날 의결로 고문 기술자 이근안 등에 대한 정부 포상이 취소됐다. 

 

▲ 김영수 행정안전부 의정관이 국방부, 경찰청 관계자와 함께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반헌법적 행위, 간첩 조작 사건 관련자 등에 대한 부적절한 정부 포상 대대적 취소 관련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의문이 드는 대목도 있다. 이번 의결 중 간첩 조작 부분과 관련해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 간첩 조작 사건 수사를 이끈 책임자에 대한 포상 취소가 빈틈없이 이뤄진 것일까라는 문제다. 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전 의원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1일 포상 취소 대상에 포함된 사건 중 하나는 유신 독재 시기인 1975년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 전신)가 터트린 재일 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다.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 또는 그해 11월 22일 세간에 공개돼 11·22사건으로도 불린다.

독재 정권 시절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여러 차례 조작되는데,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사건이었다.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서 이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다.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 중 상당수는 2010년대 들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데, 이들 사이에서 "우리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한 게 바로 김기춘 씨"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기춘은 지금까지 4개의 훈장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보국훈장 천수장)를 이 사건 이듬해인 1976년에 받았다. 이 사건은 1990년 김기춘이 5·16민족상재단에서 수여하는 5·16민족상(안보 부문)을 받게 됐을 때 신문에 수상자의 주요 '공적'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 관여한 중앙정보부 직원들에게 주어진 포상은 21일 국무회의 의결로 취소됐다. 하지만 김기춘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기춘이 1976년에 받은 훈장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라면, 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판단 근거를 제시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없었다.

두 번째, 간첩 조작 사건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었던 법 기술자, 즉 판검사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주체는 이근안처럼 직접 고문을 자행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고문을 허가하고 부추긴 국가 권력의 책임 문제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그와 함께 고문 기술자들과 합작한 법 기술자들의 책임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고문에 의한 간첩 사건 조작은 판검사의 적극적 협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검사가 이근안 등이 고문으로 조작한 수사 기록을 공소장에 그대로 옮겨 썼고, 판사는 뻔한 거짓 주장과 고문 수사 기록을 받아들여 피해자에게 중형을 선고하곤 했다. 그 시절 경찰, 중앙정보부·안기부, 보안사 등에서 발생한 숱한 고문·조작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고문 기술자에게 적잖은 격려금까지 건네며 치하한 판사들도 있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이근안은 도피해야 했지만 법 기술자들은 승승장구했다. 고문·조작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 중 여러 명이 국회의원, 행정부 고위 공직자로 변신했다.

이번 국무회의 의결 전까지, 고문에 의한 간첩 조작 사건 관련자 중 62명의 서훈이 2018년 이후 취소됐지만 검사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국무회의 의결에서도 포상 취소 명단에 경찰, 중앙정보부·안기부 요원 등은 있었지만 판검사는 없었다.

정부의 '반헌법적 행위자 및 간첩 조작 사건 관련자 서훈 취소안' 심의·의결이 김기춘 같은 간첩 조작 사건 수사 책임자, 그리고 고문에 의한 간첩 조작에 협조한 판검사들에게 의도치 않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비치지 않게 할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 포상 취소라는 법적 조치를 넘어, 더 폭넓은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할 필요도 있다. 수사 요원부터 판검사까지 간첩 조작 사건에 관여한 인사들의 명단, 행적, 공소장과 판결문 같은 관련 자료 등에 시민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쉽게 접근해 언제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김덕련 기자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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