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반도체 호황, AI가 삼킨 청년 일자리…'고용 없는 성장'의 역습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6-06-11 16:55:38

5월 취업자 수 4만명 줄어…17개월 만에 첫 감소세
반도체 고용유발계수 1.6명…"취업자 중 반도체 비중 낮아"
수출·GDP 질주 뒤에 숨은 고용시장 패러독스

대한민국 경제 지표는 지금 화려하다. 올해 1~5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3% 늘어난 3942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 중심에는 153% 폭증하며 수출 전선을 이끈 반도체가 있다. 수출 호황 덕분에 1분기 경제성장률(1.8%)은 당초 예상치를 두 배나 웃돌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올해 명목성장률이 10%에 이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친 이유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 뒤에 가려진 고용시장 성적표는 초라하다. 11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만 명 줄어들며 17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미래 세대인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무려 25만 5000명 급감했다. 2021년 1월(-31만4000명) 이후 5년4개월래 최대폭 감소다. 산업별로 제조업이 14만 명 줄어 2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수출과 GDP(국내총생산)가 이토록 질주하는데, 왜 청년들의 일자리는 이토록 빠르게 증발하고 있는 걸까. 이 기묘한 모순의 중심에 바로 'AI(인공지능) 혁명의 두 얼굴'이 있다.


호황의 주역 반도체, 고용 효과는 '바닥'

 

첫 번째 모순은 이번 경제 호황을 견인한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다. 지금의 반도체 초호황은 전 세계적인 AI 서버 증설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폭발이 만들어 낸 결과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라는 점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지만, 정작 사람을 새로 뽑는 고용유발 효과는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반도체의 고용유발계수(10억 원 생산 시 창출되는 고용자 수)는 1.6명에 불과하다. 

 

건설업(8.2명)이나 자동차(4.8명)에 비해 턱없이 작다. 그런데 5월 건설업 취업자는 196만4000명으로 전년동월 대비 4만3000명 줄었다. 25개월째 감소세다. 고용노동부 집계에서 자동차 분야 고용보험 가입자 수도 지난달 2000명 줄었다. 이런 마당에 고용유발 효과가 꼴찌 수준인 반도체 홀로 버는 돈은 고용 시장의 전체 온기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일터로 온 AI 조수, 청년의 기회를 빼앗다


더 심각한 두 번째 모순은 호황의 마중물이 된 AI 기술이 정작 고용 시장에서는 청년들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실제 기술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취업자는 지난달 8만 9000명 줄어들며 6개월째 완연한 감소세를 보였다.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가 고도화하면서 기업들이 정량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신입 사원의 자리를 AI로 대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AI 툴이 발달하면서 기업들이 개발자, 디자이너는 물론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 영역에서조차 신입 채용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한탄이 나오는 지경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숙련된 경력직 한 명에게 AI 조수를 붙여주는 것이, 미숙한 청년 신입을 여럿 채용해 교육하는 것보다 비용과 효율 면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AI 혁명이 주도한 기술의 진보가 역설적으로 고용 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인 청년층의 기회를 증발시키고 있는 셈이다.

  

 

기술의 독주를 막을 '포트폴리오 전환' 시급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반도체와 AI 중심의 성장은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며 "수출 지표는 호황이지만 내수와 고용으로 온기가 전혀 퍼지지 않는 전형적인 'K자형 양극화' 구조"라고 진단했다.

 

결국 지금의 고용 위기는 일시적 경기 침체가 아니라 기술 혁명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변화다. 정부와 학계가 AI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도 고용 파급력이 큰 조선, 방산, 원전 등 비IT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체질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AI가 이끄는 거대한 성장의 과실을 대한민국 경제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기술의 독주가 일자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사회적 고용 포트폴리오를 재설계하는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청년들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가장 잔인한 AI 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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