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전쟁과 한국⑤] 종착역은 '몸 가진 AI '…휴머노이드 최전선에 선 한국

유태영 기자

ty@kpinews.kr | 2026-06-22 17:08:44

테슬라·현대차·중국 군단 '휴머노이드 왕좌' 3파전
물량전쟁 벌이는 중국…작년 배치된 휴머노이드 80% 차지
현대차 '보스턴다이내믹스' 선점했지만, "생태계 연결" 과제

AI혁명이 글로벌 산업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본질은 패권전쟁이다. 누가 'AI의 두뇌'를 장악하고, 이를 가동할 하드웨어와 전력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은 이 총성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반도체'를 공급하는 핵심 기지다. KPI뉴스는 창간 8주년 기획으로 5회에 걸쳐 AI 패권전쟁의 현주소를 짚고, 대한민국의 필승 카드를 모색한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세계적 전자·IT 전시회) 2026 행사장. 현대자동차그룹 부스에 사람 모양의 로봇이 등장했다. '아틀라스'다. 이 로봇은 냉장고를 들어 올렸다. 단순히 집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냉장고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균형을 잡았다. 미리 입력된 동작을 반복하는 기존 공장 로봇과는 달랐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몸을 움직였다.

 

챗GPT 같은 AI는 화면 안에 있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고, 질문에 답했다. 피지컬 AI는 그 지능을 몸에 붙여 현실로 내보내는 것이다. 공장 조립라인,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일하는 로봇이다. AI 혁명의 다음 격전지는 화면 밖에 있다. 패권을 건 싸움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그곳에서, 한국은 전장 한복판에 있다. 

 

▲ 글로벌 경제·경영 조사 기관의 휴머노이드 시장 추정 규모. [각 기관 전망자료 취합] 

 

휴머노이드는 더이상 막연한 미래 기술이 아니다. 22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에 배치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약 1만6000대였다. 2년 전만 해도 시제품 수준에 머물던 로봇이 현장에 대거 깔리기 시작했다. 

 

휴머노이드 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로 성장할 것인지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 380억 달러(약 59조 원), 마켓앤마켓은 2030년 152억 달러(약 24조 원), BCC리서치는 같은 해 110억 달러(약 17조 원)로 본다. 추정 방식에 따라 전망치가 달라지지만, 연평균 35~45%대의 폭발적 성장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피지컬 AI 전선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건 테슬라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2022년 옵티머스를 발표하며 "세상을 바꿀 제품"이라고 했다. 테슬라의 전략은 명확하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직접 써보며 데이터를 쌓고, 가격을 2만 달러(약 3000만 원) 이하로 낮춰 범용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처럼, 차츰 가격을 낮춰 누구나 쓰는 물건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테슬라는 내년부터 옵티머스 대량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싸게 많이 만들기보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먼저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나갔다. 구글 딥마인드와 손을 잡고 아틀라스에 최신 AI 기술을 이식했다. 부품이 잘못 놓여 있어도 스스로 알아채고 다른 방식으로 집어 드는 수준이다. 오는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다만 현재 피지컬 AI 로봇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쪽은 중국이다. 방식은 익숙하다. 먼저 거대한 자국 시장에 물량을 공급해 규모를 만든 뒤, 속도와 가격을 앞세워 세계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전략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등 중국 제조업이 반복해 온 방식이 로봇 분야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상하이의 애지봇은 5200대, 항저우의 유니트리는 4200대 규모의 로봇을 시장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로봇 한 대 원가를 자동차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소프트웨어까지 무료로 공개해 전 세계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이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점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로봇연맹(IFR) 집계 기준, 제조업 로봇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산업 현장에는 자동차 공장, 반도체 라인, 조선소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이런 환경은 피지컬 AI를 훈련시킬 학습 데이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주목하는 지점이다.


핵심 부품 공급망도 선점 중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장 비싸고 중요한 부품은 관절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다. 사람으로 치면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근육과 같다. 이 부품이 로봇 제조 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현대모비스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이 부품의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고, 미국 현지에 연간 35만 개 이상 생산할 공장을 짓기로 했다. 

HL만도는 수십 년간 자동차 조향장치를 만들며 쌓은 노하우를 살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 '스팟'에 액추에이터를 공급 중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HL만도는 휴머노이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글로벌 로봇 기업의 품질 검증을 받은 공급업체라는 점이 큰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중국 공급망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질수록, 검증된 한국 부품사의 전략적 가치는 더 커진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세계 주요국가 로봇 밀도 순위. 대한민국이 1220대로 가장 많다. [국제로봇연맹 제공, 제미나이 재가공]

 

과거 반도체가 그랬던 것처럼, 피지컬 AI에서도 초기 표준을 누가 쥐느냐가 향후 수십 년의 구도를 가를 전망이다. 한국이 가진 이점을 살리면 아직 형성 단계에 있는 피지컬 AI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다. 

피지컬 AI 분야 전문가인 최홍섭 마음AI 대표는 KPI뉴스와 통화에서 "스마트폰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것처럼 차세대 먹거리는 피지컬 AI"라며 "피지컬 AI 산업에서 미국은 민간 주도로 조단위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중국은 국가 주도로 로봇회사들에 조단위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피지컬 AI 표준이 정해지기까진 2~3년의 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동안 국내 민간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제도적인 정부 지원이 뒤따른다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볼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러 산업 생태계를 연결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로봇 생산 역량을 확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이 제조·물류·의료·돌봄·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에 응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과 실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산업 간 융합적 수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국가 차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무역협회도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피지컬 AI 시대에 제조 강국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공장 데이터 개방과 생태계 연결이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KPI뉴스 / 유태영 기자 t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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