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과 제주4·3…악연과 인연

김당

| 2019-04-02 21:51:13

이승만, 미국 원조 얻으려고 제주4·3 강경진압
김대중·노무현, 제주4·3 첫 공론화 이어 사과
문재인, '가해자'인 국방당국의 첫 '유감' 표명

1949년 1월 21일 열린 제12회 국무회의록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시정일반에 관한 유시의 건'으로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전달했다.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 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叛徒) 및 절도(竊盜)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


제주도, 전남사건은 제주 4·3사건과 전남 여순(여수·순천) 사건을 지칭한다. 토색(討索) 은 돈이나 물건을 달라고 억지로 요구함을 뜻한다. 한 마디로 말해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라도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발본색원 하라는 군 통수권자의 지령이다.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지침은 즉각 군부대와 검찰, 경찰 계통을 통해 전달돼 제주4·3사건 진압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의 희생을 낳게 한 것으로 4·3연구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뒤로 제주도민들은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를 거치는 동안 반세기 가까이 반공법의 족쇄와 연좌제의 굴레에 억눌린 가운데서도 줄기차게 '신원'(伸寃)을 요구해왔다.

 

그러다가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에서 비로소 제주4·3은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여야 합의로 1999년 말 국회에서 4·3 특별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고, 정부는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4·3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대통령이 직접 제주도민에게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로 이번에 제주4·3사건 71주년을 맞이해 국방부가 3일 제주 4·3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방문해 처음으로 4·3 희생자를 애도하고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이를 계기로 역대 대통령과 제주4·3의 '악연'과 '인연'을 15장의 사진으로 짚어본다.

 

제주도 4·3평화공원에 있는 4·3평화기념관(제주시 명림로 430)은 4·3의 역사를 담은 그릇의 형태를 차용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되었다.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가면 4·3의 발발부터 전개, 결과, 진상 규명 운동까지 4·3에 관련한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김당]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김당]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직후 경찰과 우익 민간인 피해상황을 표기한 1948년 4월 9일자 미군 보고서 [김당]

 

당시 미군정청의 미군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제주도 주민 2500명을 검속해 경찰서 유치장 3.3평에 35명이 수감되었다. [김당]

 

미군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1952년 당시 미군의 안내를 받으며 제주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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