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귤을 까다, 계절을 묻다
정민화 기자
mhwa@kpinews.kr | 2026-10-22 14:48:25
출하 시기 너머 재배지 변화도 주목할 때
익숙해진 일상에서 기후 신호를 읽는 법
며칠 전, 마트에서 산 귤을 까먹다 문득 멈칫했다. 귤이 원래 가을 과일이었던가?
어릴 적 귤은 겨울방학의 대표 간식이었다. 추운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끝이 노래지도록 까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10월에도 자연스럽게 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물론 기억 속 계절과 실제 수확 시기는 다를 수 있다. 극조생 감귤은 원래 10월부터 출하됐고, 품종과 시설재배에 따라 귤을 만나는 시기도 달라진다. 가을에 귤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기후변화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귤이 자라는 지도는 달라지고 있다. 이를 온난화만의 결과로 볼 수는 없지만, 감귤 재배지역은 제주를 넘어 전남과 전북, 경남 등 육지로 확대되는 추세다. 장바구니 속 귤이 언제 나왔는지만큼, 어디에서 자랐는지도 살펴볼 일이 됐다.
계절의 변화는 날씨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내일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자 서리가 내릴 무렵을 뜻하는 상강(霜降)이다. 일부 지역에는 한파주의보가 내려졌고 겨울 채비를 서두르게 하는 추위가 찾아왔다.
그런데 불과 열흘 전인 지난 12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0.1도까지 올랐다. 서리를 떠올리는 10월에 한여름 같은 더위를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는 날씨는 기후 변화를 실감케 한다.
하루의 더위나 추위만으로 기후변화를 단정할 수는 없다. 개별 날씨의 변화와 별개로, 농작물 재배지역이 달라지고 계절의 양상이 변하는 장기적인 흐름은 살펴야 한다. 기존의 달력만으로 지금의 계절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낯설었던 변화가 반복돼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는 모습은 이른바 '기후 뉴노멀'과도 맞닿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적응력이다. 10월의 더위에는 반소매를 꺼내 입고, 갑작스러운 추위에는 외투를 찾는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능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익숙해지는 사이 변화의 신호를 놓칠 수 있다.
기후위기의 경고는 거대한 태풍이나 폭우로만 찾아오지 않는다. 농민이 재배할 작물을 바꾸고, 수확과 출하를 조정하며, 우리가 옷장 앞에서 계절을 다시 가늠하는 일상에도 변화의 단서는 숨어 있다.
낯선 풍경을 모두 기후변화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가을 귤이 원래 있었듯, 기억과 다른 일에도 저마다 이유가 있다. 필요한 것은 막연한 불안이나 무심한 수용보다 무엇이, 왜 달라지고 있는지 묻는 태도다.
귤을 까먹다 떠올린 작은 의문도 그런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계절이 달라지는 동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확인하려는 감각이다.
| ▲ 정민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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