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노벨상과 지능화 사회의 도래
KPI뉴스
go@kpinews.kr | 2026-10-22 11:31:39
올해 노벨상 발표가 모두 끝났다. 생리의학상부터 시작해 경제학상까지 6대 부문의 수상자들이 그 영광의 얼굴을 드러냈고, 대중은 인류 전체에 미친 천재들의 업적 해설에 귀를 기울였다. 과학 기자로서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의 3대 과학상에 제일 관심을 두지만 나머지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역시 시대정신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2024년 노벨상이 최근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해이기도 하지만, 내 전공인 인공지능(AI) 분야의 연구자들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AI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인공신경망, 즉 딥러닝의 아버지 제프리 힌튼 교수가 2012년 이미지넷(ImageNet) 대회에서 우승한지 불과 12년 만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는 장면을 보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2016년 바둑의 세계에서 알파고로 이세돌 9단을 물리치며 AI 시대를 연 데미스 허사비스도 단백질 분석 AI 알파폴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AI 전문기자로서 한해가 다르게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모습을 취재하고 있지만, 이렇게 기초과학의 심장부까지 금새 치고 들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사실 AI가 중요하지만 정통 과학에 비해 살짝 곁가지 변방 기술이 아닐까 하는 편견을 스스로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과학자들도 놀랐을 것이다. 과학 발전에서 AI가 차지하는 커다란 비중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AI for Science', 한마디로 과학을 위한 AI 또는 과학용 AI가 노벨상을 받은 해였다.
2026년 노벨 과학상은 2024년과는 또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다. 빛으로 신경세포의 활동을 제어하는 광유전학, 남극의 거대한 얼음을 이용해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관측한 연구, 분자의 비대칭 합성과 자기촉매 반응을 규명한 연구가 수상했다. 인간의 뇌와 우주, 물질의 근본 원리를 파고든 기초과학의 성과들이다. 과학이 AI의 새로운 발전을 담보하는 순환원리를 보여주었다. 'Science for AI', 즉 AI를 위한 과학이 노벨상을 받았다. 2024년이 AI가 과학적 발견의 새로운 주역으로 혜성같이 등장했음을 알렸다면, 2026년은 이런 AI 시대에도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기초과학이 여전히 그 밑바닥에 존재한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이 두 해의 노벨상을 관통하는 시대적 흐름은 무엇일까. 나는 인류가 정보화 사회를 넘어 '지능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지능화 사회는 기초과학과 AI가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발전해가는 시대를 의미한다. AI가 기초과학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며, 그 발전한 과학이 다시 AI를 고도화한다. 기초과학과 AI의 공진화(共進化)라 할 수 있다. AI는 또 산업에 즉시 적용돼 생산성을 높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AI가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를 'AI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그 특징은 기초과학이 즉시 산업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과거 응용과학이나 공학이란 중간 사다리를 거쳐 실험실-파일롯 생산-대량 생산으로 이어지는 수십 년 간의 양산 준비단계가 생략된다. 기초과학자들의 논문이 AI의 해석을 거쳐 제품생산으로 곧장 간다. 우리는 이 현상을 코로나 백신 개발 때 이미 경험했다.
정보혁명, 정보화 사회란 단어가 기억나는가. 토지, 노동, 자본의 3대 생산요소로 돌아가던 산업사회가 컴퓨터 등장 후 무형의 디지털 정보에 의해 생산이 결정되는 사회로 이행하던 초기의 용어다. 미래학자 다니엘 벨의 '탈(脫)산업사회의 도래'(1973),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1980)이 대표적인 예언서로 꼽힌다. 당시 아무 가치 없는 조각 정보(data)를 잘 꿰어야 유의미한 정보(information)로 가공할 수 있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래서 데이터 사이언스(정보과학), 데이터 마이닝(정보 추출) 같은 기술이 부상했다. 정보는 유형의 상품처럼 손으로 만질 순 없지만,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서비스업을 미국의 주류 산업으로 부상시켰다. S&P 500에서 차지하는 서비스업종의 비중 상승은 이 시기에 매우 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에서 약 50년이 흐른 21세기 초 현재, 이제 정보는 지능(intelligence)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가히 지능혁명, 지능화 사회라고 부를 만하다. 지능은 가장 큰 생산요소인 동시에 최우선 안보자산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AI 등장 이후의 생산체제 변화를 4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했던 다보스포럼의 정의는 틀렸다고 본다. 단순히 생산체제만 바꾸는 게 아니라, 안보 시스템까지 좌지우지한다. '산업혁명'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를 바꾸는 그냥 'AI 혁명'이다. 국가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이 우수한 지능의 확보에 달려있는 것이다. 두 시대의 차이는 분명하다. 정보화 사회의 컴퓨터는 인간이 원하는 정보를 저장, 검색하며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최종적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다. 반면 AI는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전략을 세우며, 소프트웨어와 로봇을 통해 실제 현장작업까지 수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지적 능력 가운데 일부가 기계에 의해 구현되고, 그것이 상품처럼 공급되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 지능이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살짝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정보혁명 이전의 200년은 산업화 사회였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유사 이래 수천 년 간 지속돼온 인류의 농업경제 체제를 종식시키며 도래했다.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는 원시 채집경제보다 더 큰 생산력을 과시하며 고대와 중세 시대를 관통했었다. 그동안 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지는 도구 혁신은 전쟁과 생산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더 날카로운 무기와 튼튼한 생산 도구를 보유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지배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증기-전기의 동력 혁신을 통해 안보와 생산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존재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던 농경사회를 공업경제 체제로 전환하며 도시 근로자 계급이 탄생했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1867)에서 분석한 소위 '자본'이 형성되면서 자본주의도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의 집중과 양극화, 환경오염, 인간성 훼손 같은 부작용이 점점 커져왔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정보혁명,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3차 산업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무형의 정보가 유형의 생산설비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자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자본주의'로 경제체제를 설명하려는 이들도 제법 된다. 이른바 디지털경제, 플랫폼경제, 가상경제론이다. 하지만 20세기말 21세기 초 지능혁명으로 지능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판은 다시 완전히 바뀌고 있다.
20세기 후반 정보혁명은 물질과 에너지 중심의 산업경제에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생산요소를 더했다. 그리고 21세기 초 AI 혁명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확장하고 정보혁명이 정보처리 능력을 확장했다면, 지능혁명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 자체를 확장하거나 부분적으로 대체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능이 새로운 '생산자원'인 동시에 사회 전체의 '인프라'가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노동자를 더 고용하거나 공장과 설비에 투자했다. 앞으로는 뛰어난 AI를 활용해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며, 신약과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 AI가 로봇과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러한 변화가 사무실을 넘어 공장과 병원, 농장과 물류창고로 확산될 것이다.
결국 지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활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지능은 석유나 철강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원료를 소비하듯 사용한다고 소진되지 않으며, 소프트웨어처럼 복제하고 다수의 이용자에게 공급할 수 있다. 반면 뛰어난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려면 막대한 연산능력과 반도체, 전력, 데이터,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지능 자체는 무형의 자산이지만 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기반은 지극히 물질적이고 자본집약적이다. 지능이란 인프라가 사회의 보편적 서비스가 되면서 소수 기업에 집중될 위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지능이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한다는 점이다. 과거 국가의 군사력은 병력과 무기, 에너지와 산업생산 능력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 AI는 위성정보 분석과 사이버 방어, 드론의 자율비행, 군사작전의 의사결정 지원에까지 활용된다. 지능을 확보하는 능력이 국가의 군사적 대응력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AI는 경제와 안보, 과학과 교육, 나아가 인간의 판단과 사회적 권력관계까지 바꾸고 있다. 정보의 독점이 권력의 원천이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지능의 개발과 공급을 통제하는 주체가 새로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지능화 사회가 반드시 풍요로운 유토피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인간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더라도 그 과실이 사회 전체에 골고루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지능을 소유한 기업과 이용료를 내고 빌려 쓰는 기업 사이에 새로운 종속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일부 지적 노동이 자동화되면서 소득과 고용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판단을 기계에 지속적으로 위임한다면 생산성은 높아지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주체성은 약해질 수 있다.
한국에도 이 변화는 절박한 과제다. 세계적인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을 갖췄다는 사실만으로 지능화 사회의 선도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와 전력을 공급하면서 정작 핵심 AI 모델과 지능 플랫폼을 해외 기업에 의존한다면 새로운 부의 상당 부분을 다른 나라에 넘겨줄 수 있다. 독자적인 지능 개발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대학과 연구소의 기초과학, 기업의 산업 응용, 전력과 컴퓨팅 인프라를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연결해야 한다. 소수 기업의 독점과 노동시장의 충격을 완화할 제도적 준비도 빼놓을 수 없다.
2024년 노벨상은 AI가 과학의 중심 무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줬다. 2026년 노벨상은 그 과학의 토대가 여전히 깊고 넓어야 한다는 현실을 일깨웠다. 이제 과학은 더 뛰어난 지능을 만들어내고, AI는 다시 과학적 발견을 가속하는 상호 진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토지를 가진 자가, 산업사회에서는 자본과 기계를 가진 자가, 정보화 사회에서는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장악한 자가 부와 권력을 누렸다. 지능화 사회에서는 누가 지능을 만들고, 누가 그것을 활용하며, 누가 그 성과를 가져갈 것인가가 새로운 질서를 결정할 것이다. 지능이 새로운 자원이자 인프라, 나아가 권력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우수한 지능을 보유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능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를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지능혁명의 성패는 기계의 지능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선택에 달려 있다.
|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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