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약 1600년 전에 이뤄진 대규모 공사 흔적이 발견됐다.
▲ 봉황동 대형건물 터 흔적
24일 발굴성과 공개 설명회에서는 이와 같은 가야의 토목기술뿐만 아니라 대형주거지와 그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된 중요 유물도 함께 선보인다. 대형주거지는 4세기대에 조성된 것으로 지난 2017년 일부 공개된 바 있다. 그 이후로 추가 조사와 연구를 거쳐 내부의 아궁이 시설과 주거지 벽체의 세부 구조를 새로 밝혀냈다.
한편 김해 봉황동 유적은 1963년 회현리 패총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1990년대에 진행된 봉황대 구릉 일대의 발굴 성과를 더해 확대 지정된 곳이다.
그간 발굴 조사를 거쳐 배가 드나드는 접안 시설, 철을 생산하고 벼리는 작업을 하던 야철(冶鐵)터, 토성 등 청동기 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흔적이 확인됐다. 이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1∼4세기 시대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