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공인 친일파 과반은 '재산 환수' 조사도 안 받았다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6-09 15:18:15
1949년 반민특위 습격 사건 계기로 반세기 넘게 환수 지연
친일반민족행위자 일가 손 들어준 몇몇 걸림돌 판결도 논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의 국가 환수는 1945년 8·15 광복 직후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무너지고, 한반도가 분단되고, 38선 이남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환수 작업은 20세기에 진행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가 구성되면서 환수 작업이 시작됐다. 친일재산조사위 활동은 4년 후인 2010년에 종료됐다. 그로부터 16년 만인 지난 2일 이 위원회의 재설치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됐다.
KPI뉴스는 친일재산조사위 부활 관련 문제를 두 편의 기사로 짚는다. 이번 기사에서는 광복 후 81년 동안 벌어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 관련 결정적 장면들을 되짚어본다. 이를 통해 확인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일가의 후안무치, 환수 작업에 방해가 된 일부 정치 세력의 행태, 몇몇 걸림돌 판결 등은 새로 구성될 친일재산조사위도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다.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1948년 9월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특별법을 근거로 반민특위가 구성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경찰 등을 비호하며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했다. 친일파가 중핵을 이루고 있던 경찰은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를 습격했다. 같은 달,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가 암살됐다. 또한 친일 청산에 적극적이던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을 전후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이어 체포됐다(국회 프락치 사건).
이 사건들을 계기로 반민특위 활동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지고 친일파 처벌은 흐지부지된다. 그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 작업은 시동도 걸지 못한 상태에서 무산됐다.
걸림돌 판결과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 급증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 또는 다른 사람이 소유한 토지 등에 대해 '조상 재산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재산 반환 소송이 1990년대 중반부터 급증했다. 계기 중 하나로 정부가 1995년부터 실시한 '조상 땅 찾아주기' 서비스가 거론된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분수령으로 1997년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재판장 권성) 판결이 꼽힌다.
친일파 이완용 증손이 일제 강점기에 이완용이 소유했던 땅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반민족행위자나 그 후손이라고 해서 법률에 의하지 않고 재산권을 제한·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완용 증손 손을 들어줬다. 지금에 와서 소급해 과거 일을 정의 관념만 내세워 문제 삼는 것이 오히려 사회 질서에 어긋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이 판결은 그 후 다른 친일파 관련 재산 소송에서 판례로 활용되며 친일 청산에 걸림돌로 작용한 주요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재판장 권성 판사는 2000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이 된다.
친일재산조사위 탄생과 악전고투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반환 소송 급증은 많은 시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부평 미군 기지 토지 반환을 요구한 친일파 송병준 후손의 소송을 계기로 2005년 '친일파 토지 반환 소송 저지 서명 운동'에 불이 붙으면서 정치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 귀속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이듬해 친일재산조사위가 출범하며, 1949년 반민특위 습격 사건을 계기로 반세기 넘게 미루어진 친일 재산 환수 작업의 시동이 걸렸다. 하지만 친일재산조사위는 강제 수사권 부재 등 여러 제약 조건 아래에서 악전고투해야 했다.
국가 공인 친일파 절반도 포괄하지 못한 재산 환수 관련 조사
친일재산조사위 활동을 정리한 백서 '친일 재산 조사, 4년의 발자취'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으로부터 친일 재산 2359필지(시가 2106억 원, 공시지가 959억 원 상당)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에 공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중 462명(45.9%)을 조사한 결과였다. 나머지 544명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 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가운데 과반은 친일재산조사위에서 조사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전원이 아니라 일부만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자라고 당시 법에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단체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재산 환수 관련 조사 비율은 더 낮아진다. 462명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축이 돼 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원 4389명의 10.5%에 해당한다.
45.9% 또는 10.5%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적어도 54%, 넓게 보면 89% 이상에 대해서는 재산 환수 관련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친일 재산 환수 문제의 현황이 어떠한지 느끼게 해주는 수치 중 하나다.
상설 기구화 건의 묵살
2010년 활동 종료 전 친일재산조사위는 이명박 정부에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가 차원의 상설 기구가 필요하니 이를 검토해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상설 기구화 건의는 묵살됐고, 법무부가 친일재산조사위 소관 업무 중 소송 부분만 승계·수행했다. 친일재산조사위가 사라진 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친일파 집안 웃게 한 또 다른 걸림돌 판결
친일재산조사위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이 소유했던 땅 192필지(시가 300억여 원대 추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했다. 이해승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은 2008년 국가 귀속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2010년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부장판사 박병대)가 1심을 뒤집고 국가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특별법에는 재산 귀속 대상 친일반민족행위자 요건으로 '한일 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라는 규정이 있었다. 이 회장 측은 이 규정을 교묘히 활용해 이해승이 작위를 받은 것은 한일 병합 공로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같은 해,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2심 판결은 친일 청산에 걸림돌로 작용한 또 다른 주요 판결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재판장 박병대 판사는 나중에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되는데, 박근혜 정권 붕괴 후 사법 농단 연루 혐의로 기소된다.
임기 만료 폐기, 또 폐기
친일재산조사위 재설치 법안이 20대(2016~2020년)·21대(2020~2024년) 국회에 연이어 제출됐다. 하지만 모두 정치권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 관련 지시를 계기로 입법 논의가 가속화돼 이번 특별법 공포로 이어지게 된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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