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의 사각사각] 트럼프가 져도 대미외교 쉬워지는 건 아니다
박희준 논설위원
phj@kpinews.kr | 2026-11-04 15:54:08
의회 바뀌어도 대외 재량은 대통령 몫
트럼프 약화 기대 접고 의회로 넓혀야
전작권부터 시험대…의회 문턱도 변수
북미회담 돌파구 땐 한국 소외 우려도
미국 유권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중간평가에서 엄혹한 성적표를 내밀었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4년 만에 민주당 하원 장악이 사실상 확정됐다. 개표가 한창이던 밤 CNN과 NBC는 민주당이 과반 기준(218석)을 넘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다. 상원 결과는 예사롭지 않다. 선거 전 판세는 초박빙으로 평가됐는데, 노스캐롤라이나에 이어 텍사스와 오하이오, 메인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텍사스에서 민주당 승리가 확정되면 1988년 이후 처음이다. 상원 다수당을 확정하기엔 이르지만 공화당이 지켜 온 의석이 잇따라 흔들린 것만은 분명하다.
미 언론은 이란전쟁에 따른 고물가와 생활비 부담이 표심을 흔들었다고 분석한다. 민주당이 하원을 쥐면 청문회와 조사, 소환 같은 견제 수단을 손에 넣는다. 새 의회가 출범하는 내년 1월까지는 양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상원까지 민주당 몫이 되면 고위직 인준과 예산, 국방수권법 처리에서 행정부가 의회를 비켜가기 어려워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 전만 하더라도 불복 여지를 두던 그다. 다만 패인은 당과 후보 탓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자기 이름이 투표용지에 있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회 권력이 바뀐다고 미국 대외정책까지 바뀔까. 관세와 대외정책의 결정권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다. 의회가 대통령 뜻과 다른 법을 통과시키더라도 대통령에게는 거부권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전부터 민주당이 의회를 쥐면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선거 당일 CBS 인터뷰에서는 '미스터 비토(Mr. Veto)'라는 별칭도 환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상·하원 3분의 2가 필요하다.
미 중간선거 결과는 우리 국익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합의와 수출품 관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협의, 기업 인력 비자 문제가 모두 선거 이후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물론 민주당이 의회를 쥐면 관세 폐지를 압박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무역협회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행정명령을 활용한 미국 우선주의 통상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통상법 232조와 301조에 근거한 관세 권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쥐어져 있어서다.
이번 선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장악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 관세와 제재 같은 행정 수단은 여전하다. 오히려 대미 전략을 백악관에서 의회로 넓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미국공영라디오(NPR) 집계에 따르면 이번 선거를 거쳐 얼굴이 바뀌는 상·하원 의석이 99석에 이른다. 전체 535석의 5분의 1 가까이다. 한미 동맹의 가치를 다시 설명해야 할 새 얼굴이 그만큼 늘었다. 군사·외교·세출 등 동맹 현안과 직결된 상임위에서만 최소 48명이 떠난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 현안은 여러 전선으로 나뉘어 있다. 안보에서는 전작권 전환 협의와 주한미군 역할, 미국이 요청해 온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이 겹쳐 있다. 조선과 반도체 협력, 전략 투자 사업 같은 산업 현안도 있다. 미국 의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안이 많다. 핵추진 잠수함 연료 이전에는 미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국방수권법은 주한미군 감축에 국방장관 인증과 의회 보고 같은 조건을 붙여 놓았다. 백악관이 열쇠를 쥐고 있어도 문을 잠글 수 있는 곳은 의회다.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를 건 전작권 전환 문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워싱턴 세미나에서 안보 환경 변화를 이유로 한미가 합의한 전환 조건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긴장 기류가 강해졌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1차장은 3일 라디오에서 미국이 한반도 방위에 과거만큼 집중하기 어렵다며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미중 경쟁과 러우 전쟁, 이란 문제, 호르무즈 위기까지 미국이 신경 쓸 곳이 많다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화당 패배에도 외교 재량은 여전히 대통령 몫이다. 의회 견제가 강해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외교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유력한 카드로 꼽힌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8월 분석에서 선거 이후 회담이 재개될 수 있고, 김정은 위원장이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는 데 관심을 둘 것이라고 봤다. 북한이 서울을 건너뛰고 워싱턴과 도쿄를 직접 상대하는 쪽을 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북한이 호응할지는 별개지만, 대화 테이블이 차려져도 서울의 자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우리 외교 대응이 더욱 정교해야 하는 시점이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한국이 구경꾼이 돼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회담 추진 과정에서 우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미국과 긴밀히 소통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라는 원칙이 흐려지지 않도록 백악관뿐 아니라 의회와도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민주당 주도 하원이 대북 정책에 조건을 달고 주한미군 문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일본과 공조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외교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회가 12월 한미의원연맹 방미를 추진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성적표를 내밀었다. 이제 대미 외교 현장에서 우리가 답안지를 써가야 할 차례다. 새 의회에 들어설 외교·군사·예산 상임위 의원들에게 한미 동맹의 가치를 설명하는 일이 그 첫 문항이다. 백악관만 바라보던 시선을 의회로 넓히고, 북미 변수에는 한미일이 함께 대비해야 한다.
| ▲ 박희준 논설위원 |
● 박희준은
1993년 12월 세계일보에 입사해 32년 9개월간 일했다. 사회부 시경캡, 사건데스크, 사회부장으로 수습기자 교육과 사건 취재를 맡았고 논설위원, 부국장,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법조팀장 시절 후배기자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로 결말지어진 '박연차 게이트'를 다룬 '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를 펴냈다. 수습기자 교육 경험을 담은 취재와 기사 작성 실무서인 '실무 기자수업'을 2026년 말 출간할 예정이다.
KPI뉴스 / 박희준 논설위원 ph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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