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과학과 예술, AI 앞에서 다시 손잡다

KPI뉴스 / 2026-06-11 09:25:11

과학과 예술은 이란성 쌍둥이다. 철학이란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라 할 수 있다. 둘은 가장 창의적이란 면에서 닮았고, 각각 이성과 감정의 대변인이란 점에서 다르다. 철학은 나와 세계를 공부하는 일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철학은 자연 과학을 말한다.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 즉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약간 넓히면 나의 내부, 즉 인간 본성과 사회를 탐구하는 인문사회 과학으로 확장된다. 여기에 음악, 미술 같은 예술을 더하면 넒은 의미에서의 철학, 즉 종합학문이 된다. 

 

진리를 추구하는데 어떤 접근법을 사용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 과학과 예술은 지성과 감성을 고양시키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다. 동시에 과학과 예술은 태어날 때부터 기성체제의 금기에 도전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유전자를 공유하는 반항아로 자라왔다.

학문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초기 자연 과학자들은 신과 권력자의 권위에 용감하게 의문 부호를 던졌다. 제우스신의 분노로 번개가 친다던 제사장의 믿음에는 원자론으로 맞섰다. 독재자에 저항하며 독배를 마시고 철인(哲人) 사회로 나아가길 꿈꾸었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의 전통은 플라톤-코페르니쿠스-뉴턴-다윈-아인슈타인으로 이어져왔다. 과학 발전은 그전까지 당연하다고 여기던 만인의 세계관을 갈아치우는 과정이었다. 천동설은 지동설로, 창조론은 진화론에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으로 자신과 외부를 더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들 역시 태고 때부터 아름다움과 올바름, 당연함의 상식을 뒤집어왔다. 신이나 권력자 입맛에 맞춘 찬양과 봉헌(奉獻)으로 출발한 예술은 만인에 대한 위로와 봉사로 넓어졌다. 제례 음악은 궁정 콘서트로, 대중극장 공연으로 확대되었다. 미술 사조에서 고전파-인상파-야수파-입체파로 이어지는 화풍 변화는 곧 전통과 권위에 맞서는 도전이요, 미래와 가능성을 향한 개척의 몸부림이었다. 진리에 대한 당대의 관념을 거부하고 미적 실험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예술가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다채로운 미감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은 이렇게 태어날 때 쌍둥이 형제였지만 성장 과정에서 점점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과학은 연구 분야가 쪼개지면서 더 분석적으로 변해갔다. 예술도 시대에 어울리는 미적 감각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둘 사이는 멀어졌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학자,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는 화가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아득해졌다. 공대생과 미대생은 더 이상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며 과학과 예술이 다시 융합하고 있다. 둘 다 인공지능(AI)의 도전과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AI 과학자를 연구 동료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디까지 함께 일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몰렸다. 예술가는 생성 AI를 도구로만 활용할지, 공동 창작의 주체로 어느 정도 인정할지 역시 고민하고 있다. 가장 창의적이고 높은 정신활동이라 여겼던 두 영역의 학문과 지적 모험이 여태 없던 새로운 공통 도전에 맞닥뜨린 것이다.

특히, 과학 윤리와 예술 저작권은 당장 해결해할 숙제를 안게 되었다. 과학자는 AI 살상무기와 AI 생명공학 연구에 착수해야할지 말지 기로에 섰다. 예술가 또한 AI를 활용한 창작의 가이드라인 앞에 서있다. 정치인과 법률가,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사회제도를 설계하기 전에 과학자와 예술가 스스로 새 시대를 규율하는 자정(自淨) 질서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것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과학자는 근대 과학이 탄생하던 르네상스 시절부터 자신의 양심에 최종 판단을 맡기는 내재적 윤리관이 요구되었다. 16세기 해부학의 아버지 베살리우스는 공동묘지에서 불법으로 시체를 훔쳐 방대한 연구서를 발간했다. 현대 농업혁명을 이끈 화학비료의 재료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한 독일 과학자 프리처 하버는 히틀러의 요구에 굴복해 인명 대량살상 무기 독가스도 발명하였다. 아인슈타인은 핵무기 개발을 제안했지만 사용에는 반대했다. '죽이는' 과학 말고 '살리는' 과학을 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의 AI 개발자는 죽이는 AI 만들기에 동참할지 말지를 겁박 받는다. 과학 윤리의 도전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예술가의 독창성도 흔들리고 있다.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겼던 글, 그림, 음악 등의 창작물 생산을 기계가 척척 해내고 있어서다. 지식재산(IP) 권리 중 14세기 유럽 베네치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권 역시 도전을 받고 있다. 

 

기원에 따르면 저작권은 일종의 독점생산 권리로 출발했다. 중국에서 모셔온 도공이나 장인의 창작물에 높은 몸값을 보장해주기 위해 베네치아 위정자들은 일정기간 타인의 복제생산을 금지했다. 이게 출판물 등 다른 분야로 확장된 것이다. 그래서 저작권의 주체를 인간에 국한해왔던 게 지금까지 전 세계 특허법원의 일관된 판례이다. 

 

그러나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인정해달라는 소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판례변경의 필요성이 생기고 있다. 언제까지 미룰지 기약이 없게 됐다. AI 예술가는 인정하지 않더라도, 인간 예술가가 AI를 조수로 써서 동반 창작하면 그 예술성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과학은 가장 앞선 연구의 경계선에서 예술적 미감이 요구되고 있다. 이 연구는 아름다운가, 시대정신에 어울리는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가 하는 판단이다. 예술은 첨단 과학의 예리한 도구를 갖고 와 경계를 넓히고 있다. 입신(入神) 신진서 9단은 "AI 덕분에 내 바둑세계가 더 깊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기술(技術)이 기예(棋藝)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지금 과학과 예술이 다시 만나고 있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형제간 브로맨스의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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