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전쟁과 한국②] 빅테크 전쟁 격화할수록 뜨거워지는 K-반도체

유충현 기자 / 2026-06-16 15:41:34
오픈AI·MS 연합에 맞서는 앤트로픽·구글·아마존
ARM 진영의 반격…인텔 x86 '40년 패권'에 도전
전쟁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삼전·닉스 메모리 필요

AI혁명이 글로벌 산업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본질은 패권전쟁이다. 누가 'AI의 두뇌'를 장악하고, 이를 가동할 하드웨어와 전력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은 이 총성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반도체'를 공급하는 핵심 기지다. KPI뉴스는 창간 8주년 기획으로 6회에 걸쳐 AI 패권전쟁의 현주소를 짚고, 대한민국의 필승 카드를 모색한다.

이달 초순 재계의 시선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방한에 쏠렸다. 지난해 10월 '깐부치킨 회동' 이후 불과 반년여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젠슨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이번엔 '삼겹살 회동'을 가졌다. 

 

젠슨 황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스케줄을 분 단위로 쪼개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기업인이다. 뚜렷한 이유 없이 긴 시간을 할애해 방한할 리 만무하다. 작년 10월 방한 이전까지 15년간은 한국을 찾지도 않았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랬던 젠슨 황의 잇단 방한이 뭘 의미하는가. 

 

젠슨 황의 잇단 방한과 '깐부치킨','삽겹살' 회동은 글로벌 빅테크의 AI(인공지능) 패권 경쟁이 거세질수록 한국 반도체와 AI 인프라 기업의 몸값도 함께 뛰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엔비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중이다. AI 생태계 주도권을 두고 다른 글로벌 빅테크와 명운을 건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시끌벅적한 일정을 마치고 출국하는 길에 그는 "한국의 기술 없이 우리의 첨단 슈퍼컴퓨팅 구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진행 중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한국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지금 AI 생태계에는 커다란 전선이 형성돼 있다. 우선 AI 모델을 둘러싼 전쟁이다. 어느 AI가 세상의 표준이 되느냐를 둘러싸고 두 진영이 맞붙는 중이다. 한쪽에는 챗GPT 개발·운영사인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동맹을 맺고 있다. MS는 2019년부터 오픈AI에 13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워드, 엑셀 등 자사 제품에 AI 기술을 활용해 왔다. 

 

다른 한쪽에 앤트로픽, 구글, 아마존이 있다. 앤트로픽은 클로드(Claude) AI를 만드는 회사다. 창업자 다리오 아모데이는 원래 오픈AI 직원이었다. 2021년 내부 갈등 끝에 동료들과 함께 나와 경쟁사를 차렸다. 구글과 아마존은 오픈AI가 아니라 앤트로픽에 각각 수십억 달러를 베팅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클로드를 제공하는 제휴 관계도 맺었다.

 

현 시점으로 본다면 후발주자인 앤트로픽이 앞서가는 모양새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지난달 컨퍼런스에서 연간 환산 매출이 300억 달러(4월 기준)를 넘어섰다고 했다. 2024년 말 10억 달러에서 15개월 만에 30배 성장한 수치다. 사라 프라이어 오픈AI CFO는 올해 초 공식 블로그에서 연간 환산 매출을 200억 달러로 제시했다. 챗GPT로 세상을 바꾼 오픈AI도 결코 느린 성장세가 아니지만, 앤트로픽에 역전을 허용한 흐름이다.

 

▲ 오픈AI와 앤트로픽 '연간 환산 매출(ARR)' 추이 [오픈AI CFO 공식 블로그, 앤트로픽 CEO 개발자 컨퍼런스 발표(2026년 5월) 종합]

 

다른 전선도 펼쳐져 있다. AI 모델 전쟁이 '두뇌' 싸움이라면, AI를 구동하기 위한 하드웨어 싸움도 치열하다.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가 나온 이후로 40년 넘게 시장을 지배했던 인텔(Intel)의 설계 체제(x86)도 도전에 직면했다. 이전까지 인텔이 프로세서 표준을 정하고 제품을 공급해 온 체제였다. AI 시대가 되면서 이런 40년 체제에도 균열이 생겼다.

 

인텔의 x86 설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위협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용으로 개발된 'ARM(저전력 설계 기술) 칩'이 AI 서버 시장까지 치고 들어오면서 상황이 변했다. 전력을 적게 쓰면서도 AI 연산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된 영향이다. 글로벌 IT산업 조사기관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 서버의 ARM 기반 프로세서 비중이 2025년 25% 수준에서 2029년에는 90%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ARM 진영'의 반란은 엔비디아가 주도하고 있다. 젠슨 황은 지난달 1일 대만 컴퓨텍스 행사에서 ARM 방식을 적용한 PC용 프로세서 RTX Spark를 발표했다. 당시 그는 "PC의 재발명"이라고 선언했다. 올해 가을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델·HP·레노버가 이 칩을 탑재한 노트북을 출시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서버용 프로세서 베라(Vera)도 공개했다. GPU(그래픽처리장치)로 출발한 엔비디아가 인텔·AMD가 독점하던 서버용 프로세서까지 넘보는 중이다.

 

이런 엔비디아도 안전하지 않다. 그간 독점하다시피 해 왔던 AI 연산용 GPU 시장에서 추격받고 있어서다. 구글은 자체 AI 칩(TPU)와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엔비디아를 압박 중이다. 아마존과 메타도 같은 방향이다. 엔비디아의 GPU를 사지 않고 AI를 돌릴 수 있는 생태계를 직접 짓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안전하지 않은 싸움판이다.  

 

▲ AI 데이터센터 서버용 CPU에 적용된 아키텍처(설계) 비중 전망치. [카운터포인트리서치(2026년 4월)]

 

글로벌 빅테크 전쟁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누가 이기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를 본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의 모델 자체는 거의 평준화됐고 이제는 누가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느냐의 경쟁"이라고 진단한 뒤 "그것을 빨리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 메모리이기 때문에 결국 AI의 게임은 메모리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무기'를 국내 기업이 공급하는 형국이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황 CEO는 최 회장과 만나 "SK하이닉스는 앞으로도 엔비디아의 최대 메모리 공급자"라고 못박았고,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차세대 메모리 장기 협력을 논의했다. 황 CEO는 이것을 "한국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상 엔비디아에게도 'K-반도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무라증권은 "향후 5년간 메모리 수요는 수천 배 증가하는데 업계 공급 증가는 5~6배에 그쳐 구조적 공급 부족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메모리는 더 이상 단순 부품이나 경기민감주가 아니라 AI 사용량이 늘수록 의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AI 문명의 필수 기억 저장소'"라고 전망했다.

 

젠슨 황도 비슷한 시각을 내비친 바 있다. 앞서 최 회장이 지난 2일 대만 컴퓨텍스 행사에서 "향후 5년간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 능력을 2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자, 황 CEO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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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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