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품귀는 일시적 현상" 반론도
"에스크로·보증보험 집주인 의무화"...안전장치 시급
한국의 독특한 주거계약 '전세'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 임대차 계약 열 중 일곱이 월세다. 30년 경력 공인중개사가 "난생처음 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시적 현상일까, 전세의 종말로 가는 것일까. KPI뉴스가 현장을 점검하고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그간 전세제도는 단순한 주거 방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무주택 서민에게는 주거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무이자 자금' 통로였다. 세입자의 보증금을 매매 자금으로 활용해 적은 자기자본으로도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기반으로 이른바 '갭투자'가 확산되며 주택 가격 상승을 떠받치는 한 축으로 기능한 측면이 있다.
전세가 줄면 이 같은 투자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증금을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 이른바 '갭투자'가 어려워져 집값을 밀어 올리던 힘도 약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전세가 줄어드는 추세는 이 같은 의미있는 변화를 동반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세가 종국에 사라질 것인가. KPI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중론이다. 다만 전세 제도가 아예 소멸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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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단지. [KPI뉴스 자료사진] |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책적 요인, 구조적 요인, 시장 상황이 모두 전세 축소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집값 상승 기대가 낮아질 때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사람이 드물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의 축소는 불가피하겠지만, 전세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기존 전세 계약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고, 전세를 선호하는 수요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다른 전문가들도 전세 축소를 예상했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도 "현재 전세가격이 과도하게 높기 때문에 앞으로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후 '갭투자'가 감소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차차 안정될 수 있지만,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대중 한성대 석좌교수도 "전세제도는 향후 구조적으로 축소될 것"이라며 "보증부 월세나 월세 계약으로 바뀌어가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시각도 있다. 한문도 명지대 겸임교수(한국부동산경제협회 회장)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전세 품귀'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애초에 전세가 줄어든 원인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기간 종료가 예고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란 집을 여러 채 가진 집주인이 주택을 팔 때, 매각 차익에 대해 기본 양도소득세율 외에 추가 세율을 매기는 조치다. 정부는 2022년부터 미뤄 온 제도 시행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유예가 끝나면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팔 때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20%포인트, 3주택 이상은 30%포인트가 추가로 부과된다.
한 교수는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기간 내에 처분하려고 세입자 없이 비워뒀던 매도 물량이 다음달 9일 이후 다시 임차 시장에 풀릴 수 있다"며 "전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로 전세가가 오르긴 어렵지만, 전세 제도 자체는 앞으로 20년은 더 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이어진 임대차 시장 구조가 격변하는 시기인 만큼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른바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가 비(非)아파트 주택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만큼 임차인을 보호할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비아파트 부문의 전세 보증금 보호 대책이 지금으로는 부족하다"며 "'에스크로(임차인이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직접 주지 않고 신탁사·은행 등 제3의 기관에 예치하여 안전하게 보관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인 법령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행 제도는 집값 하락으로 집주인이 파산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스템 위험'을 세입자에게 지운다는 점에서다.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사장은 "특히 전세 보증제도는 당장 고쳐야 해결될 문제"라며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보증서를 발급받도록 관련 법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도 "'위험한 전세'를 '안전한 전세'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 과정에서 집값 대비 과도한 보증금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배지수·서승재 기자 didyou@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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