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이세돌, UNIST서 'AI 시대 인간의 한 수' 토크콘서트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 2026-05-06 16:00:41

자기주도형 융합인재상 제시…GRIT인재융합학부 신설 취지 소개

"AI가 더 빠른 답을 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물을지, 어떤 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 이세돌 UNIST 특임교수와 이창호 국수가 GRIT인재융합학부 오픈스테이지 토크콘서트에서 관객 질문을 듣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 UNIST에서 AI 시대 인간의 역량을 논했다. 이창호 국수와 이세돌 UNIST 특임교수는 6일 오후 2시 대학본부 대강당에서 'UNIST 오픈스테이지(Open Stage) 1' 토크콘서트를 갖고, 바둑의 수읽기와 복기를 바탕으로 판단력과 창의성, 끈기의 의미를 풀어냈다.


이날 토크콘서트의 주제는 '반상 위로 먼저 온 미래: 이창호·이세돌이 전하는 AI 시대의 한 수'였다. 객석을 가득 채운 학생과 교직원, 시민 200여 명은 두 기사의 바둑 철학이 미래 교육의 언어로 확장되는 대화에 귀 기울였다. 진행은 김철민 GRIT(그릿)인재융합학부장이 맡아 AI 이후의 변화, 패배와 재도전,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역량을 차례로 짚었다.


UNIST가 첫 공개 무대의 소재로 바둑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 판의 바둑에는 계산과 직관, 결단과 책임, 복기와 재도전이 모두 담겨 있다. 이미 주어진 답을 빠르게 외우는 능력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끝까지 몰입하는 힘이 중요해지는 AI 시대 교육 방향과 맞닿는다. 이번 행사는 UNIST가 새롭게 출범한 GRIT인재융합학부 운영 취지와 인재상을 대중에게 알리는 첫 공개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 이창호 국수가 UNIST GRIT인재융합학부 오픈스테이지 토크콘서트에서 바둑에서 얻는 통찰과 도전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이야기는 두 사람의 다른 기풍에서 문을 열었다. 이창호 국수는 흔들림 없는 집중력과 정교한 형세 판단으로 '돌부처'라 불렸다. 이세돌 교수는 직관과 파격, 상식을 깨는 승부수로 세계 바둑계에 이름을 남겼다. 한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정확성으로, 다른 한 사람은 판을 바꾸는 창의성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창호 국수는 "좋은 수는 대개 흔들리는 순간에 나온다"며 "끝까지 생각하고 버티는 시간이 결국 실력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세돌 교수는 "창의적인 수는 갑자기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수없이 부딪히고 실패한 시간이 있다"며 "남이 보지 못한 길을 보려면 먼저 자기만의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 기사는 AI를 승패가 아닌 해석의 문제로 바라봤다. 바둑은 인공지능의 충격을 가장 먼저 겪은 분야다. AI는 훈련 방식과 복기 문화, 포석의 상식까지 바꿨다. 그러나 두 기사는 AI가 더 많은 답을 보여줄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그 답을 이해하고 자기 판단으로 옮기는 능력이라고 역설했다.

 

이세돌 교수는 "AI가 강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 답을 보고 무엇을 다시 물을 수 있느냐"라며 "낯선 상황에서 자기 생각으로 선택을 내리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호 국수도 "정답을 보는 것과 그 정답에 이르는 길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며 "AI가 좋은 수를 알려줘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 이세돌 UNIST 특임교수가 GRIT인재융합학부 오픈스테이지 토크콘서트에서 알파고 대국의 의미와 AI 기술이 바둑계에 미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대담은 '패배 이후'의 이야기에 이르러 한층 깊이를 더했다. 정상에 오른 두 사람에게도 슬럼프와 패배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두 기사는 "바둑에서 진다는 것은 한 판을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며 "왜 졌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어느 순간 판단이 흔들렸는지 확인하며, 다음 승부를 준비하는 시간이 뒤따른다"고 입을 모았다.


이창호 국수는 "이긴 판보다 진 판이 더 오래 남는다"며 "아픈 패배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보는 시간이 다음 승부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이세돌 교수는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관건은 그 뒤에 멈추느냐, 다시 수를 찾느냐"라며 "학생들이 실패를 끝이 아니라 다음 질문의 시작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GRIT인재융합학부는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신설됐다. 학생이 기존 학과를 먼저 고르는 대신, 자신의 연구 질문과 관심 분야, 진로 목표를 바탕으로 학업 경로를 직접 짜는 교육 모델이다. 수업은 프로젝트 기반 탐구교육(PBI)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전담 교수가 학생의 학업과 탐구 과정을 1대 1로 지도한다. 과도한 학점 경쟁을 줄이고 도전적 학습을 장려하기 위해 P/NR(Pass/No Record) 평가 방식도 적용된다.

 

▲ 이창호·이세돌이 'AI 시대의 한 수'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졸업 시에는 융합이학사 또는 융합공학사 학위를 받는다. 학생이 직접 설계한 전공명은 성적증명서에 공식 표기된다. UNIST는 2027학년도부터 'GRIT인재전형'으로 신입생 10명 내외를 별도 선발할 계획이다.


김철민 GRIT인재융합학부장은 "학생이 스스로 던진 집요한 질문 하나가 4년간 탐구하는 전공이 되고, 실패와 재도전의 기록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며 "AI 시대에는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 못지않게, 정답이 없는 영역을 견디고 질문을 설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종래 UNIST 총장은 "대학은 학생이 자기 질문을 만들고, 실패를 견디며, 스스로 해법을 찾아가는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며 "이번 행사는 바둑이라는 상징적 매개를 통해 인간 고유의 끈기와 창의성, 판단력이 미래 인재의 핵심 조건임을 확인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한편, UNIST는 이번 오픈스테이지를 시작으로 GRIT인재융합학부의 교육 철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5월 말에는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 UNIST 특임교수의 스크리닝·아티스트 토크가 이어진다. 이후에도 과학기술, 예술, 창작 분야 인사를 초청해 AI 시대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상을 시민과 학생에게 전할 계획이다.

 

KPI뉴스 /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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