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경보 내려진 날에도 오후까지 일해"…기후보험금 미지급
보험업계와 지방자치단체가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생활 위험을 무료로 보장하는 '상생보험'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까다로운 지급 조건 때문에 실효성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제도의 혜택을 받는 대상은 늘었지만, 정작 사고가 나도 실질적인 보험금 수령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3일 금융위에 따르면 경남·경북·광주·전남·전북·제주·충북에 각 20억 원씩, 총 140억 원 규모의 상생보험이 순차 출시된다. 6개 지역은 사망하거나 3대 질병 진단을 받으면 보험금으로 대출을 갚는 신용생명보험을 운영한다. 손해보험은 화재·휴업·상해·사이버범죄 등을 보장한다.
'폭염경보' 떠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제주 기후보험의 맹점
먼저 시행된 제도를 살펴보면 보험금을 받기 위한 허들이 높다. 대표적으로 '제주 기후보험'은 도내 1억 원 이상 공공 건설현장의 퇴직공제 가입 일용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오후 1시 이전 폭염경보가 발효되고 오후 작업이 전면 중단될 경우에만 시간당 1만7210원(하루 최대 6만8840원)이 지급된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제주도 발주 공공시설 현장에서 일하는 50대 형틀 노동자 강민철(57·가명) 씨는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에도 작업을 멈추라는 지시는 없었고 오후까지 일했다"며 "계속 일한 탓에 보험금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강 씨는 "내가 기후보험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먼저 일을 멈추면 일당이 줄거나 다음 현장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작업을 멈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재희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보험금 지급의 전제인 '공사 작업중단'이 현장에서 과연 얼마나 이뤄지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건설노조가 노동자 2515명을 조사한 결과, 체감온도 38도 이상에서도 별도의 중단 지시 없이 일했다는 응답이 50%를 넘었으며, 중단을 요구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17.8%에 그쳤다.
다른 지역 상생보험도 '입증의 벽' 높아
다른 지역의 맞춤형 손해보험 상품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의 휴업손해보험은 1년 이상 영업한 소상공인이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해 가게를 닫아야만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월세와 공공요금 등 고정비를 입원 3일째부터 하루 최대 5만 원씩 열흘간 지원하지만, 이틀 이하 입원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남의 청년 안심보험(만 15~49세)은 업무 중 상해로 4주 이상 진단받아야 최대 90만 원을 지급하며 교통사고는 보장 대상에서 뺀다. 충북의 사이버보험 역시 피싱·해킹·스미싱 등의 피해 사실을 가입자가 직접 입증해야 손해액의 80%(한도 100만~300만 원)를 돌려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외형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실제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생보험이 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무료 보장 기회를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가입자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조건 때문에 보험금을 받지 못하면 실질적인 보장의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입자 수는 정책의 외형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라며 "사고 건수와 더불어 보험금 신청·지급·거절 건수와 그 사유를 상품별로 면밀히 관리해야만 진정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KPI뉴스 / 이수민 기자 smlee68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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