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의 직썰] 팔면 "매도 폭탄", 안 팔면 "손실 책임"…국민연금 향한 언론의 이중잣대

류순열 기자 / 2026-10-19 17:28:37
하락장엔 구원투수 기대, 자산 재조정엔 매도 폭탄 경고
182조원 평가액 감소, 확정 손실·원금 손실과 구분해야
노후자금 평가 기준은 장기 수익률·위험 관리·운용 독립성

국민연금이 '182조원을 잃었다'고 한다. 많은 언론이 회초리를 들었다. "운용 원칙을 포기한 대가"(15일 한국경제)라거나 "관치 부양이 부른 손실"(18일 디지털타임스)이라며 책임론을 거론했다. 국민 노후자금인 만큼 운용의 적절성을 따지는 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에도 물을 것이 있다. 증시가 흔들릴 때마다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불러내려 하지 않았는가. 그래놓곤 주식을 팔면 "매도 폭탄" 운운하고, 가격이 폭락하면 국민 노후자산 날렸다고 책임을 묻는다. 국민연금은 이래도 맞고, 저래도 혼난다.

 

본론에 앞서 숫자부터 정확히 읽고 가자. 이번 182조원은 확정손실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사 주식의 6월 말 대비 10월 15일 평가액 감소분이다. 고점 대비 평가액 감소와 취득원가 대비 손실은 다르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언론의 언어는 익숙하다. 증시가 침체했을 땐 '증시 구원투수'라는 표현을 즐긴다. 국민연금이 마땅히 증시를 구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언론의 클리셰다. '구원투수 국민연금 강판 임박'(지난해 2월27일 조선비즈), '구원투수 기다리는 코스피'(지난 7월20일 매일경제). 증시가 침체할 때마다 반복되는 기사 제목들이다.

 

반대로 주식을 팔 때는 폭탄이 된다. '국민연금 내일부터 리밸런싱…50조원 매도 폭탄 덮친다'(6월30일 중앙일보), '국민연금 50조 매도 폭탄 쏟아진다…증시 초긴장'(〃 한국경제) 식이다. 자산 쏠림을 줄이려는 위험 관리가 독자에게는 시장을 덮칠 재앙으로 인식된다. 수급 충격 가능성을 보도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 나눠 팔 물량을 당장 쏟아질 폭탄처럼 제시하면 매도 자제를 압박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번엔 비판의 방향이 바뀌었다. 주가 폭락으로 국민의 노후자산을 날렸으니 책임지라는 것이다. 하락장에서 사면 '증시 구원투수', 비중을 줄이려 팔면 '매도 폭탄의 주범', 보유 주식이 떨어지면 '노후자산을 축낸 책임자'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언론의 주문 속에 국민연금은 사도, 팔아도, 들고 있어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개별 기사마다 이유가 있고, 설명은 가능하다. 문제는 시장을 바라보는 시황 보도의 잣대와 노후자금을 평가하는 잣대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시장 수급과 기금 수익률 중 무엇을 우선하는지 밝히지 않은 채 상황마다 잣대를 바꾸면, 국민연금에는 상충하는 주문만 쌓인다.

 

국민연금의 투자로 시장이 안정되는 것과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외압이 있었다면 수익이 나도 문제, 원칙을 지켰다면 단기 손실만으로 무능을 단정할 수 없다. 

 

따져야 할 것은 장기 수익률, 위험 관리, 의사결정의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은 주가를 받칠 의무가 있는 돈이 아니다. 국민의 노후를 지켜야 할 돈이다. 언론의 잣대도 그 목적에 맞춰져야 한다.

  

▲ 류순열 편집인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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